설교말씀

sub_ment Portland Downtown, Oregon

목마름과 생수의 강

treasure 2017.08.27 14:56 조회 수 : 101

설교날짜 2017-01-29 
본문 요7:37-38 
설교자 남궁진 목사 
주제  

빈 트럭을 운전하다 보면, 실제적으로 짐을 실었을 때가, 더 안정감을 느낍니다.

짐을 실었을 때, 균형 잡히도록, 그 부분을 가볍게 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빈 박스 트레일러를 달고 달릴 때는 더욱 더 느끼게 됩니다.

그 바퀴에는 무게를 완화해 주는 스프링이 없으므로, 조그만 턱을 넘어가도, 심한 진동을 느끼게 됩니다.

목마른 자들이 지구에 가득함 (세계의 정치의 지형도 유래없이, 다급해 지고 있습니다-목마름시대,내코석자)

 

인간은 원초적으로 무엇인가? 를 채우고 있어야 만족함을 느끼도록 창조 되었습니다.

그것을 목마름에 비유했을 때, 목마름이 심각해지면…무엇이라도 채우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을 위해서, 채우는 사람이 있고,…조물주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사람이 있습니다.(어거스틴:이성?)

채움에는 예외가 없음(왜냐하면,인간은 그저 컴퓨터와 같습니다. – 채우는대로, 용량대로 나오는 컴퓨터임)

그 사람에게서, 쓰여지는 현상이 무엇인가? 를 알면,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인가? 를 금방 알게 됩니다. (나를 한 번 돌아 보자–무엇이 내 안에 들어 있을까요?)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기에서, 재물은 ‘나자신’과 바꿀수 있는 단어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친구로서가 아니라, 주인 격이 되어야 하신다면, 하나님과 나누어서, 섬길 수 있는 공식은 없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이든지 아니면, 내가 주인일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다른 것이 곁들이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이스라엘의 우상숭배는 둘 다 섬김)

 

사용하고, 즐기는 문제와 숭배의 문제는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허락하신 이 세상은 아주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 자녀들이 마음껏 즐기면서, 세상을 살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 마음껏 즐기세요. 그렇게 이야기해도 못 즐깁니다. – 즐겨보지를 못함)

왜냐하면, 하나님의 세상이 이러한 세상이라는 것에 대한…무지, 혹은 미성숙, 혹은 눈이 가려 있음 등)

대신에, 세상에만 눈이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세상만 보이고, 하나님의 신성이 거기에 있는 것이 나타나니까, 그것을 신으로 섬기고…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 사탄은 그것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마귀가 득실대지만, 하나님의 세상입니다.

그 하나님이 보이는 사람들은…이러한 황홀한 하나님의 세상을 보면서, 하나님을 보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엄청난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이 주신 세상을 마음껏 즐깁니다.

그러나, 그 세상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확실히 믿기에 절대로, 그것을 하나님보다 높이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러한 삶입니다.(즐기세요??? 즐겨요. 망가졌지만, 아직도 아름다운 이 세상을…)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은 마치 자녀들의 즐거운 모습을 보면서, 흐뭇해 하는 부모처럼, 웃음지으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감사로, 그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자녀들은, 만사를 제치고, 예배하는 날 빼먹지 않습니다. (예배, 최고의 가치, Worthship함)

하나님이 원천이시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으로 일이 조금 비끌어져서, 잘 못 된 것 같아도…그렇게 서운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이 비롯되어서, 그 분이 결론지으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 역사 속에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보자면, 타락 이후로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세상의 것으로 채우려고 끝없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타락했다는 말은,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말인데…그렇게 점점 시간이 가면서, 더 멀어지게 되고, 멀어지게 되면, 만남도 약화되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사라지고,…대신 이 세상만 덩그라니 남아서, 아옹다옹하게 되고, 메마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래, 내 안에 하나님께서 거하시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진정한 만족을 주는 것이, 그러한 이 세상에는 없는 것입니다.

설사, 그것이 만족을 줄 수 있다 손 치더라도, 그것이 지속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속 대상을 바뀌게 되고, 하나를 정복하면, 열정을 다해서, 이룬 그 정복에서, 허탈감을 느낍니다.

 

정상을 정복했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그렇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지, 세상에 정상은 없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찾지 않으면, 정상은 허탈할 뿐입니다. <무엇인가? 성공을 꿈꾸는 젊은이도 같음>

그 정체성은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 구원의 비밀을 깨달을 때가 정답을 발견한 때입니다.

그 분이 보내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의 섭리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십자가의 은총이라는 말임: 십자가는 시작, 마침임)

왜? 그 이야기를 항상 하는가?

그 길 밖에, 다른 길은 없기 때문입니다.<요14:6의 말씀이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천국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와 사귀는 길의 시작이,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한다는 말 입니다. – 진리 안에 거하는 길이 바로 그 길이고, 생명에 거하는 길이 바로 그 길이라는 말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삶 가운데서, 선악과일을 따 먹기 전과 후의 삶이 완전한 대조를 이루게 된 것이 바로 그러한 때문입니다. (영원히 살아야 하는 생명과일은 예수생명의 예표임)

그래서, 창세기를 보면, 인간의 삶의 형태는 에덴의 타락 이후에 급속도로 그 환경이 나빠집니다. <회복 필요>

보면, 아담부터 노아까지 거의 900살이 넘는 수명이, 노아 홍수 후에는 급격히 400대로 떨어지고, 바벨탑 사건 이후로는 200대로 떨어진 후, 계속해서, 아브라함 시대에는 100대로 떨어집니다. <타락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은…삶의 환경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타락은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든지, 세상으로 채워지는 바로 그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 채운다는 말은, 바로,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세의 위대한 신학자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참 믿음과 아주 비슷한, 참 믿음이 아닌 믿음이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참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도, 때때로 신앙적인 감동으로 들어간답니다.

히브리서를 인용합니다. (히 6: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히 6: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히 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또, 누가복음을 인용합니다. (눅 8: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눅 8: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씨뿌리는 비유 이야기 입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뿌리를 낼 사이도 없이, 새가 먹어버리므로, 싹을 맛보지 못하지만, 흙이 얇게 덮여 있는 바위나,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은 뿌리를 내리지만, 잠간 믿거나, 혹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받기는 받았지만, 시련을 당할 때, 배반하고, 또한 세상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버리는 자를 말합니다.>

 

두 구절이, 서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모두 생명의 신비를 체험한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1)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 본 사람들이나, (2)여기,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 잠깐 믿은 사람들, 모두 말씀을 접하고, 믿음을 가졌음을 말하는 구절들입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들이 멸망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믿고 있는 저와 여러분 가운데서, 다시 타락하거나, 이생의 염려, 재물, 향락에 기운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참 두려운 말씀이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주권적인 믿음으로, 확신 가운데 거하면서,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고 믿으면서도, 아직은 도착하지 않은 그 <사이를 Tension>을 가지고, 목마름의 생명을 가지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갈증이 무엇입니까? 살아 있는 사람만이 느끼는 것이 바로 갈증입니다. [새겨들으십시오]예수님의 생명으로 덧입은 사람은 반드시 영적 목마름이 있습니다.) – 어떠십니까?

칼빈은 불안한 긴장 관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기독교강요. 중권, 제2장. 11. 버림 받은 사람들에게도 ‘믿음’은 있는가?)에서,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선택 받은 사람들에게서만 바울이 칭송한 확신 즉, 높은 소리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확신이 풍성하게 자란다. <반짝 그들이 가진 믿음은 Fake, 진정한 믿음이 아니었음이 그렇게 들어나게 되는 것>

그래서, 늘 말씀 드리지만, 고린도후서 13:5에서, (고후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영어로 말하면, (II Cor. 13:5) Examine yourselves to see whether you are in the faith; test yourselves. Do you not realize that Christ Jesus is in you--unless, of course, you fail the test?

시험하라는 말은…자신을 그렇게 용광로에 던져 넣어 보라는 말입니다.

(가리키면서) 그리고,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다는 깨달음이 오느냐? 오지 않느냐? 를 묻습니다.

그러한 일들을 통해서, 우리는 내가 주 안에 있는가? 를 시험하는 것이고, 테스트 하는 것인데, 그런 때, 내 안에 계신 주를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다는 말입니다.

(Fail-믿음을 검증하는 일, 테스트 하는 일에 실패를 한다는 말입니다.)

 

그야말로, 저와 여러분이 세상을 살면서, 믿음을 시험하는 것 같은 시련에 던져질 때, 말입니다.

두 가지로 압축이 가능합니다.

(1) 믿음에서 멀어지면서, 그 일에만 매달리는 사람, (2)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더 매달리는 사람입니다.

전자인 사람은, 진정한 믿음의 실패자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정신세계에 주신 말씀이 풍성하게, 지식으로 들어 있다 해도, 그렇게 삶이 표현된다면, 그것은 바로 그 시험을 통해서, 그가 탈락한 것입니다. (회복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후자인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은 아버지께 더욱 매달리면서, 풍성한 믿음의 세계로 가는 사람입니다.

(갈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렇게 만들어 가심의 은혜>

평상시에는 같은 장소에 있다가도, 바람이 불면, 극과 극으로 갈리는 현상이 있죠?

그것을 이용해서, 옛날 우리 선조들이 사용했던, ‘키’라는 것이 나왔습니다. 

알곡과 죽정이가 있는 곡식을 그 안에 넣고, 키를 아래 위로 흔들면, 일어나는 바람으로 껍데기는 날라가고, 안 쪽 깊숙히 알곡이 자리를 하는 것입니다.

가짜 믿음은 바로, 그렇게 갈라지게 되어 있습니다.(저와 여러분은 어디에 계셔요?)

용광로도 마찬가지 입니다. (쇠와 금붙이들은 아래로 내려가 묵직하게 자리를 하고, 그 이외의 쓰레기들은 위로 떠올라 타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갑니다. (아멘? 은혜 아니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 그 믿음으로 서게 됨)

역사 속에서, 택함 받은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더 더욱 더 믿음으로 들어갔음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바로, 옥토에 떨어진 씨앗과 같이, 풍성함으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바로, 풍성함으로 채워지는 상태와 그렇지 못한 상태에 관한 말씀합니다.

주님은 오늘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이 초막절을 언급하시면서, 생수의 강을 말씀 하십니다. 

(요 7: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초막절 축제의 끝 무렵에 이 말씀을 하신 의미가 무엇일까요?

초막절, 장막절, 수장절…모두 광야동안 천막을 40회이상 세웠다, 헐었다 하면서 주님이 인도하셨음을 기억하면서…그 광야생활 중심에 그 갈증을 해결하시는 그 분이 그 분임을 기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 예표이신 예수님이 多등장하심)

 

예수님을 믿는 자는 생수<생명수, 생명력>가 흘러나오는 데, 그 생수는 예수님이십니다.

그것은 내부로부터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풍성함입니다.

외부의 조건이 아니므로, 그러한 생수는,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바로, 주 예수님이 그 생수의 ‘원인자’이십니다.

주 예수님이 그렇게 여러분에게 다가오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믿음으로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갈증은 ‘예수 아니면, 채울 수 없는 것’이 진리입니다.

현대는 목마름의 시대입니다. <내가 목마른데..내 코가 석 잔데, 누구를 위할 수 있습니까? 목을 못축였어…>

주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생수로 목을 축인 자만이, 세상을 향하여, 진정으로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나에게 안 계신 것이, 비극입니다.

불행한 것은 세상이 그것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달으셨다면, 목숨걸고, 그것을 지키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 생명으로 계실 때, 그 배에서, 갈 함이 없는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옵니다.

이러한 축복이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함께 기도하실까요?)–예수님의 생수의 강으로, 늘 촉촉한 은혜로 죽을 때까지 살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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