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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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나, 이제 구원하소서 (시118:25)

treasure 2017.09.03 06:39 조회 수 : 146

설교날짜 2017-04-09 
본문 요12:12-16 
설교자 남궁진 목사 
주제  

오늘은 종려주일인데요, 예수님은 계산해 보면 주일 에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그 날, 주님을 따르는 대부분, 수 많은 사람들이 승리의 상징인 종려가지를 흔들면서, 주님을 환영한데서, 종려주일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들이 열렬히 환영했지만, 예수님 예루살렘 입성의 의미와 그 사람들의 환영의 의미는 달랐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구약의 예언대로, (요 12:15)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구약 슥9:9 인용구) (요 12: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인 줄 생각났더라

예언의 성취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었는데, 왜 나귀를 타고 들어가시는 지, 제자들도 그 의미를 처음에는 몰랐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지나고, 부활하신 후, 깨달은 후에 그들이 ‘아하’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호산나, 우리를 구원하소서의 진정한 의미도 모르고 그들은 부르짖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대의 초점이 서로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힘이 없이 잡혀가시는 예수님에게 등을 들렸습니다. – 기대를 저버린 예수님을 버림

자신의 기대치로 주님을 기대했던 것입니다.-군중심

 

군중들이 가는 길은, 대부분 진리의 길이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군중들이 걸어가는 군중의 길이, 항상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좁은 길을 권장하셨습니다.

그 길은 협작하여, 찾는 이가 적지만, 그 길은 ‘생명으로 가는 길’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말하시는 것입니다.(어떠한 사람들이 군중심리에 동요되지 않고, 묵묵히 그 길을 갈 수 있을까요? – 도를 발견한 사람)

그러한 사람들이 길을 인도하는 사람이 됩니다.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은 많지만, 그 길은 멸망의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길 잘못 듬)

소수의 사람들만이 참 길에 들어선다는 말입니다.

바로 진리의 길, 십자가의 도가 그러한 길입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the message of the cross)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예수님이 그 힘든 십자가를 지는 것처럼, 우리가 짊어져야 하는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지신 십자가가 주는 메세지의 그 큰 의미를 깨닫고 수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의미)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련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고, 정말 깨달은 소수만이 구원을 받고, 그 능력을 덧입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엇을 깨닫는 것입니까?)

십자가의 도 – 예수님의 십자가가 던지는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직구세주이시다.)

보면,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대부분의 사람들 가운데 진정으로 예수님을 찾은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제자들 조차도, 주님 생전에 예수님을 전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항상 안타까워 하심-오늘도 주님은 주님이 초월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신앙의 대상으로 보이지 않으면…곧바로, 스승이나, 지혜로운 현인으로 보게 되고, 주님의 주신 말씀을 교훈으로 받게 됩니다.(그래도 무리는 없지만)

그러나, 주님은 훨씬 그 이상입니다. (황새-참새=못따름)

구약만이 율법이 아니라, 신약에서 주신 것들도 계명으로 법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쏟아내신 법을 지킬 능력이 없습니다.) = 그것들은 하나님이라는 분, 예수님이라는 분의 성품이 어떠한가를 알려주고, 그 분을 만나려는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갈 것을 지도해 주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100% 지킴으로 구원 받는다고 기대조차 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우리들의 제한적인 능력을 아시는 주님께서, 짊어지신 그 십자가의 메시지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

그러한 의미에서, 기독교인답게 사는 것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 받은 감격이 있는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계명은 그렇게 살도록 주신 것임)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마음가짐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우선하는 것은, 바로 믿음으로 주 안에 있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주님과 생명의 접붙임을 믿고..주님을 의지하는 그 상태임)

그렇게 주님 자체를 볼 수 있다면, 그냥 주님 자체로, 전체가 보이므로…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임이 이러한 분인데…그들은 아직도 주를 모릅니다.

그래도, 그 분은 왕으로 입성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몰랐지만, 그 분은 진정한 왕이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대접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왕은 배고픔과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해주실 지상의 지도력을 가진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주께 바라는 것은, 배고픔과 굶주림에 허기진 배를 채워 주시는 왕이었습니다.

군사와 경제를 빼앗아 버린, 로마의 압제로부터 민족을 구원할 분이 그 분일 것이라는 큰 기대를 가지고 알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옆 동네 베다니라는 곳에서 나사로를 살렸듯이 질병과 생명도 걱정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이미 적어도 그 군중들에게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그러한 왕의 자격을 가지고, 유명세를 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짜 예수님의 정체 는 몰랐던 것입니다. (롬5:8이 그러한 사실을 설명합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승리의 상징인 종려가지를 흔들고, 예수님께서 걸어가시는 곳에서 “호산나, 호산나”하면서 외쳤습니다. 

주여! 이 어려운 이 환경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달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에 찬 군중들은 예수님의 예루살렘의 행적을 보면서, 삽시간에 그에게 실망을 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들을 압제하는 사람들 앞에서, 전능하신 능력을 보여주기를 소망했는데, 그런데, 그 분은 너무나 나약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 분의 일주일의 행적이,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충분히 실망시켰습니다. (철저히 정치적인 행보 아님)

출애굽시의 양을 구별하여 잡는 바로 그 절차 따름…

월요일 날 그 분은 먼저 성전을 찾아 가서, 성전을 장사판으로 만드는 자들을 쫓아내십니다.

화요일, 또, 사람들은 모르지만, 예수님을 죽인 형벌로, 멸망 당할 예루살렘의 미래를 보시고 안타까워 하십니다.(AD70)

수요일, 바로 잡히시기 전날 밤, 고요히 침묵하십니다.

이미 악해질 대로 악한 군중들을 불쌍히 여기면서, 고통 당하시는 날입니다.

드디어 목요일,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십니다.

그리고는 그날 밤, 잡히십니다.

그리고 심문 받으시는 과정에서 호산나 했던 군중들은 성난 군중으로 돌변하게 됩니다. 

금요일은 ‘수난의 날’, 예수께서 심문을 받으시고 오전 9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 동안, 하셨던 행동과는 전혀 다르게, 아주 나약한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충분히 실망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잘 못 알고 있었음을 전제로….)

십자가 상의 7마디 속에서도, 주님은 자신의 사역이 무엇인지를 토해내셨는데…사람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삽시간에 성난 군중으로 돌변하고 말았습니다.

우리자신들도 변하기 쉬운 존재들인지 모릅니다.

군중들은 군중들이었습니다.

군중들은 시시각각으로 마음이 변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군중심리라고 합니다. 

그러지 않겠다고, 백번이고 다짐을 하지만, 그렇게 하지를 못하고 돌아서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체를 모르면, 우리는 군중심리에 휩쓸리게 됩니다.

+++군중에게서 빠져 나오자+++

베드로도 예수님 앞에서,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마 26:33)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그런데, 그도 역시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우리도 같습니다. 주님을 십자가로 만나지 않으면, 우리도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어쩌면, 그들이 부르짖은 호산나!, 주여 구원하소서는 그들의 영적 부르짖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잘 못 본, 예수님에 대하여, 부르짖는 소리일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또 하나의 비본질과 본질을 봅니다.

비본질을 추구하는 한, 우리는 그 분과 접촉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금속에서 비금속으로 전기가 안통함 같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방법으로 가지 않는 한, 우리는 주님과 교제도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시작에 이미 우리와 그 분과의 만남에 대하여, 간단명료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막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 관심이 하나님의 나라회복인데…그것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 오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당시, 수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이유로 주님을 따르다가 떠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최후의 죽음의 순간을 목도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구레네 시몬이, 정치가들 중에서는 니고데모가, 재력가들 중에서는 아리마대 요셉이, 로마인들 중에서는 백부장이 큰 감명을 받고 주님의 열렬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의 실체가 보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신앙의 대상이 된 것임)

 

비본질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곁을 떠났지만, 본질을 본 사람들은 그의 곁에 남아서, 십자가를 지기로 결심합니다.

잠시 동안, 주의 곁을 떠났던, 제자들은 모두 다 돌아와서, 순교의 십자가를 졌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만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생생하게, 여기 기록된 그 말씀이 육신으로 살아계신 그 분이…생명으로 사시는 것)

 

사람들은, 정치적인 예수를 갈망했지만, 사람들은 경제적인 예수님을 바랐지만, 진정한 구원은 ‘생명의 구원’이기에 주님은 진정한 그들의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시 118:22)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시 118:23)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시 118:24)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시 118:25)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호쉬아 나)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인생 욕망의 건축자들은 그를 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진정한 생명의 머릿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이기적인 목적 때문에, 버림 받으신 그 분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비밀’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진정으로 발견한 사람들은 절대로 주님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생명력은 그냥 퍼져 나가는 생명자체입니다.

주님은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그러한 주님이, 우리 안에 진정으로 임재할 때, 우리의 삶은 ‘생명력의 삶’으로 피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에,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제자들을 향해서,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진통의 언어를 말씀하십니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물질에 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명예와 권력에 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적인 번영에 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죽으시고, 이루실 ‘생명’에 관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성난 군중들은 바로 이 사실을 지나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 건축자들은 그러한 목적으로 그 분을 버렸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생명의 머릿돌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여러분, 주님을 통해서,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목숨이 경각이 있는 분들은, 내 새명 만 살릴 수 있다면, 내 재산을 다 내어 놓겠습니다. 고 합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영원한 생명을 쥐고 계신 분’이십니다. – 생명의 주인을 믿고 삽시다.

주님으로 인해서,우리들의 생명이 ‘영생’하게 됩니다. (최고복) 

여러분이 모를지도 모르는, 자신의 영혼의 진정한 소망은 ‘생명을 얻는 그것’ 입니다.

 

그 생명의 사랑의 절정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심으로 사망을 이기시고, 생명의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큰 무덤이 세상적인 영광의 면류관일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생명의 빈 무덤이 자랑입니다.

진정한 호산나는, 이것입니다.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구원, 구원하소서는 생명의  회복입니다.

오늘 이 종려 주일에, 본질적으로 주님이 보이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진정한 ‘우리들의 생명을 주도하시는, 생명력이 넘치는 우리들의 왕’으로 변치 않는 주인으로서, 영원히 함께 계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기도하실까요?

생명, 생명력이신 주님, 인도하심을 감사 드립니다.

주님만 의지하도록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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