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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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3)

treasure 2017.09.03 11:05 조회 수 : 155

설교날짜 2017-07-16 
본문 엡6:11-20 
설교자 남궁진 목사 
주제 영적무장 

어떤 분의 간증의 내용입니다.

사고로 남편을 잃고, 또한 사기를 당해 집까지 잃어버렸던 믿음 좋은 자매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암 진단까지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들이 기도하고 있는 어머니를 향해서 울부짖으며 말합니다.

“하나님이 어머니에게 해준 것이 뭐 있다고 이렇게 기도하세요?”

그러자 이 자매님께서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남편을 잃은 것도 한스럽고, 집을 잃어버린 것도 원통하고, 이렇게 건강까지 잃어버린 것도 서러운데, 하나님까지 잃어버리고 믿음까지 잃어버리면 뭐가 남겠니?”

 

종종 풀리지 않는 삶의 그 무엇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무엇들 때문에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그 무엇들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왜 잊어버릴까요? (주신-영생,구원 우선임-이러한 것들은 너무 우리들에게 부족한가요?)

예수님 말씀 하시기를…팔다리 멀쩡하고. 지옥 가기 보다…차라리 잘라버리고 천국 가는 것이 낫다고 하심.

이 세상 삶의 기준점은 그 분의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임 (생명 없으면 가진들 소용없음)

그 사실에 감격하기에, 그래서 그 사랑의 하나님 때문에 어떤 시련과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며, 참 행복의 길로 들어설 수가 있는 것이 믿음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필요에 의해서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고 신앙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은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이 사랑에 의해서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욕심으로 인해서 행복과도 멀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나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을 하나님 탓)

아니, 사탄에게 놀림 당함으로 일어난다고 해야겠음.

사실, 부정적인 모든 상황은 사탄이 만들고, 가져다 줍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우리 모두의 긍정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단 한 분의 위로가 있다면,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서,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사 40: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창조자가 그 분이시라면…얼마나 권세와 능력이 크신 분이십니까? (상상해 보세요.)

그러한 분이 또, (사 41:14)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내 이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징그럽다고 말씀하시면서도…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이 사랑에서 누가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전체는 사랑의 책입니다. – 무궁무진한 하나님의, 이와 같은 사랑의 언어가 녹아 있는 책이 성경입니다. – 그래서 복음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그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구현이 되었는가? 를 말하는 복음구절입니다. (노래…)

 

이러한 사랑을 의심하게 하고, 파괴하는 자가 누구인가? (예수님과 나의 밀월의 공간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 – 사탄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해서 넘어지게 한 사탄은 제2의 아담이신 예수님에게 동일한 수법으로 접근했습니다. (아담은 패배하고, 예수님은 승리하셨음을 보여주는 내용이 바로, 마태복음 4장 입니다.)

 

바로, 사탄이 사역의 시작을 위해서, 40일 금식 기도하신   예수님에게 접근합니다.

사탄은, 우선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케’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과감하게 의심을 조장함)

마귀는 예수님에게 다가와서,(하나님을 시험토록)

 

1.돌들로-떡이 되게 하라. (배고픔을 면하라)

2.거룩한 성에서-뛰어 내리라. (천사가 수종들리라)

3.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절하라 (천하를 주겠다.)

 

사탄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고 계속해서, 토를 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왜? – 시험이 필요?…증명시키려는 것이고, 그것은 의심 부름)

 

악한 시대가 이적과 기적을 요구함 (믿지 못하니까… 봐야 믿게 되는 것임…)

사탄은 예수님에게 의식주 문제에서, 자기의 이름을 내세우는 문제에서, 세상에 나의 세력을 과시하는 문제들에 있어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기를 유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3:6, 에덴에서의 먹음직, 보암직, 탐스럽게…와 같은 수법이고, 요일2:16절에서, 세상을 사랑하지 말 것을 주문하면서, 세상의 것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의 마귀의 동일한 수법임)

바로, 에덴동산에서와 꼭 같은 방법으로 예수님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속 하나님을 높입니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한마디로 마귀수법은 ‘세상적인 것을 본질화’ 시킵니다.

세상적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없는 세상의 모든 문화’를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떠나서, 그럴듯한 명분으로 가지고 가는 모든 삶 가운데서, 그러한 사탄의 술수를 보게 됩니다. (물질 문명이 모두 그러한 것입니다. – 물질 우선주의 삶=우상숭배임)

지금, 세상의 문화를 일컬어서,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안 계신 나 중심의 문화를 만들어 가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세상을 만들자는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처음부터 마귀가 노린 것이었고, 에덴동산에서는 마귀의 승리로 끝이 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오신 분이십니다.

그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를 짊어지신,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그 분은 요한이 말한 대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온유함의 상징인 양입니다.

그 분은 우리와 꼭 같은 사람으로, 역사 속에 계셨던 분이십니다.

세상은 그 분을 4대 성인의 범주에 넣습니다만, 그 분은 그 성인들과 달리, ‘죄는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죄에서 자유를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그 분을 우리의 구원자로 영접만 하면, 우리는 모든 ‘죄와 죄책’에서 해방이 됩니다. (죄책은 지옥 행인데…영벌을 면했다는 말 -아멘)

 

그러나, 그 분은 어린양만이 아니고, 사자이기도 하십니다.

목자로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사자는 무엇을 합니까?

동물의 왕입니다.

어린양은 피 흘림의 상징이지만, 사자는 전쟁과 승리의 상징입니다. (스스로 피 흘리셨지만, 그 분은 권세자이십니다.)

 

창세기에서, 야곱은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하는 유다에 대한 축복에서, (창 49: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으로 오실 것인가? 를 예언하는 구절입니다.

세상의 죄에 관해서는 양이지만, 목자의 입장으로 돌아가시면, 그 분은 사자이십니다.

 

이 시대를 보며, 오히려, 이미 승리하신 왕이신 주님에게 붙여 드릴 이름은 ‘사자’여야 한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는 사탄과의 전쟁을 심각하게 선포할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의 교회들에게 전선포고를 하고, 달려드는 사탄의 술책들을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누가 그러한 짓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사탄임)

목회자와 목회자가 주먹다짐을 하고, 목회자가 장로를 치리하고, 장로는 목회자를 사회 법정에 고발하고, 이것을 참 신자들이 하는 일인 것 같습니까?

사탄이 하는 일입니다. (사람을 보지 말고, 그 뒤에서, 웃음지으며, 뒷짐지고 있는 사탄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전쟁터에 있고, 마귀는 우는 사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한번 이기고, 한번 재기 불능 치명상을 입음-걱정하지 말 것, 지금은 상처입고, 살아나서, 또 공격합니다. 그러나 이미 패잔병이므로 이겼습니다. 주님이 승리주셨음)

 

그렇지만, 다시, 오늘 본문에서 10-12절에서, 우리 전신 갑주를 입을 이유는, 아직도 죽은 것이 아니라, 패잔병의 분풀이를 하거든요. (도주하면서…살생함)

왜냐하면, 아직도, 이 세상은 그렇게 승리한 마지막, 전쟁터임을 다시 말씀 드립니다. (사탄)

다시 말씀 드리지만, 사탄은 얕보아서도, 너무 두려워 할 이유도 없습니다.

어차피, 사탄은 한 끝 모자랍니다. (7에서 하나 모자람)

일곱은 하나님의 완전수이므로, 그 분으로 충만하면, 사탄은 항상 우리들의 밥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큰 일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얕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인간 관계 안에서, 우리는 사탄의 전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엡 6:11) 마귀의 궤계(Scheme)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가 하나님으로 옷입을 이유, 마귀의 궤계(Scheme)는 사탄의 음모를 말합니다.  

사탄의 음모는 어디에 있습니까?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하나님을 제외시킨, 세상의 통치자들과, 세상의 권력과, 이 어두운 세상의 힘과 그 세력을 좌우하는 악의 영들에 대한 것인 것입니다.

그러한 막강한 힘을 이기는 유일한 힘은, 권세와 능력을 지니신 하나님으로 옷 입는 길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 자체로는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지만, 엄청난 존재입니다.

 

그렇지만, 마귀는 한 분에게는 이길 수 없습니다.

자신을 이긴 그 한 분에게는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를 의지하고, 믿는 믿음의 소유자에게도 이길 수 없습니다. (십자가 사건임-믿음으로 이미 이겼음, 확신)

저와 여러분 가운데서도, 믿음을 가진 사람을 이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이신 하나님, 예수님이 그들에게 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이름 자체로 능력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들어 주신다는 말은, 그 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이름 앞에서, 도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사실이 마귀의 유혹이라고 생각이 드실 때에, ‘예수 이름으로…..계속….’ 무찌르고, 대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 앞에, 마귀는 쫓깁니다. (찬양, 예수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마귀는 쫓긴다.)

우리의 일상에 마귀는 항상 올무를 놓습니다.

 

여러분 중에, 주일 교회에 오려고 하니까, 꼭 일어 터져서, 교회를 못 온다든지, …..예수 믿으려고 하니까, 가족에 중한 일들이 닥친다든지,…. 그래서, 주일에 친척이 방문해서, 등등 모두 마귀의 수법의 일환일 수 있습니다.

어떠한 분들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가?

절대 넘어갈 것 같지 않는 깊은 신앙의 가정에는 안 일어납니다.

신앙이 깊지 않는 가정을 향한 마귀의 유혹입니다.

걸려 넘어가기 쉬운 사람이므로, 수작을 거는 것입니다.

 

섭섭한 병이 들어서, 교회에서 멀어진다든지, …모두 마귀의 수법에 말려들고 있는 현상입니다.

여하튼 모든 하나님을 향하는 일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모든 일들은 마귀의 수법에 당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세상 끝날까지 지속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를 드리려고 할 때에, 그러한 일들이 발생하면, 어떻게든지 이기고, 나오면, 그 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큰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특히,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최고로 높여 드리는 것)

그래서, 예배를 방해 합니다.

여기에, 예배를 자주 빠지는 분들은, 마귀에게 그렇게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은 일상 생활에서, 오는 일들이겠거니 하겠지만, 마귀는 그러한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면서, 늘 주저 앉아 있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이 세상에 살기에 영적이 싸움이 그렇게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무장하는 믿음 만이 이러한 것을 이 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단 한 분의 위로는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세상적으로 성공했다 해도, 하나님과 멀어진다면, 그것은 마귀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성공입니다. (사실은, 성공으로 위장한 패배임)

마귀에서, 승리를 안겨주는 성공 여러분 원하십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나의 성공이 더욱더 주님과 가까워 졌다고 고백할 수 있을 때, 이것이 진정한 성공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할 때에, 우리는 그러한 성공을 하게 됩니다.

본문에 있는 대로, 우리는 이 시대에, 사탄과의 전쟁 선포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회를 전초기지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한, 하나님으로 옷 입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할까요?

형식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승리를 확신하는 믿음 주세요.

믿음만 가지고 있어도, 마귀는 도망 가는데…그러한 믿음으로 든든히 서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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