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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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바라보자

treasure 2017.08.27 12:07 조회 수 : 106

설교날짜 2017-01-01 
본문 히12:1-2 
설교자 남궁진 목사 
주제 2017신년설교 

세상에는 두 가지의 싸움이 존재합니다.

그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사탄은 싸움을 걸어 왔고, 사탄은 스스로 패배의 좌충수를 두었습니다.

창세기 3:15에서, 그 싸움의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예견했습니다. (사탄과 그들은 죽고, 그리스도와 그들은 상처를 입고…) –다른 싸움들은 거기에 곁들인 것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싸우는 것의 정의를 했습니다.

딤후4:7-8절.내가 선한 싸움(the good fight)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선한 싸움이라고 하고,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결과가 무엇인가?)

그 선한 싸움과 달림의 결과에 ‘믿음을 지켰다는 것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모습은 사실, 여기에서 나와야 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치열하게, 싸움을 싸우는 모습은 아주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선한 싸움은 아주 근본적인 가치를 두고 전개가 됩니다. (정의와 싸움 좋은데…믿음은?)

우리의 선한 싸움은 ‘예수 그리스도’와 긴밀하게 연관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끝까지 연결되어 있는 싸움이고, 막판 싸움인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연결이 되어 있을 때만이, 끈질기에 끝까지 견딜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바울은 견뎠고, 지금 그 이야기를 편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경쟁과 비교 속에서 상대적인 이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세상인데,..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은 오직 한 분만을 바라보는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인 가치는 언제나 바뀌고, 불안하지만, 절대적인 가치는 언제는 든든합니다.(세상에서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지만, 주님을 향하여서는 절대가치는 상대가치를 몰아 냅니다.)

 

오늘 저는 우리의 절대적인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새해를 시작하면서, 또, 다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자꾸 기억합시다.-Why? 계속망각함)

그래서, 본문에서, 주신 말씀은 ‘우리들의 눈을 예수님에게 고정하자’고 말합니다. (Fix 하자고 합니다.)

오늘 날,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이 종종 길을 잃어 버리는 이유는, 그리스도 자체에, 우리 눈을 고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목적지가 뚜렷한 사람은 실수로, 한눈을 팔다가도, 제자리로 항상 돌아오게 됩니다.)

 

이러한 핵심적 가치에 무게를 두지 않으면, 그것은 언제나 본질을 벗어난 것이 되는 것이어서, 길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오병이어의 기적의 주님이 너무 위대하게 보여서, 군중들은 기적을 바라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병 고치는 능력의 주님을, 위대하게 보고, 따릅니다.

주님 자체보다는, 그 기적에 관심 때문에 책망받습니다.

그러니까, 그 분이 화려하게 기적을 베풀 동안에는, 그 분을 전능하신 분으로 생각합니다. (신비주의-콤플렉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이적과 기사가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이고, ‘우리의 죄악을 대속하는 것’이므로, 언제까지 기적을 베푸실 수는 없었습니다.

기적을 베푸는 이유는 그들에게 예수님을 믿게 하시려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요14: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그러시다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힌다는 사실을 말씀하신 후부터, 현저히, 주님에게서 기적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붙잡혀서, 기적의 예수님 답지 않게,…뭇 매를 맞고, 찔리고, 상하고…십자가에 달리십니다.

그러자, 그 똑 같은 군중들은…침 뱉고 욕하고, 성난 군중으로 돌아섭니다. (기적을 베푸시는 전능자를 믿었던 것입니다. – 기적병에 걸려, 예수님을 오해)

예수님이라는 실체를 모른 채, 살아갈 때, 우리도, 그들처럼, 그리스도를 그렇게 취급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지만,- 그 분의 실체는 그 전지전능을 훨씬 넘어서는 ‘불타는 사랑’으로 이루신 ‘십자가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 분을 실제로, 모르면…그 분이 가지고 오신, 그 엄청난, 은혜의 보따리를 풀어 보지도 못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메시야 장, 이사야 53장을 늘 보고 은혜를 받지만,  사53:56.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찔리시고, 상하시고, 하나님께 우리 대신 징계를 받으신 사건을 미리 말씀하신 예언입니다.

이 사건 때문에,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이 사건 때문에 우리가 ‘치유함’, 나음을 입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진정한 치유는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임)

=벤허 영화에서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후에, 나병이 치료 받음 – 성경적인 진리입니다. (십자가치료)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평화를 얻고, 모든 경우에서 치유함을 받았음을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고난 당하신, 십자가의 사건에 대하여 진정한 깨달음이 있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으므로…진정한 평강과 치유함의 역사는 십자가를 체험할 때, 느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명과 나의 깨달음이 일치되는 일)

 

진정한 화목과 관계는 바로 거기서 시작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가장 큰, 감격과 감사와 기쁨을 가져오는 것이고, 그래서, 십자가를 제대로, 알고 깨달을 때, 저와 여러분은 이사야 53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or, 수박 겉핥기 식으로만 이해를 함)

지구상에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살지만, 진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를 누리는 신자들이 많지 못한 것은 바로, ‘십자가의 대속과 용서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십자가의 용서는 현재적으로 계속되어야만 하는 은총입니다. 그렇게 될 때, 치유함도 계속되어지고, 평화도 지속이 되는 것임)

그래서 보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상대적이 아닌, 절대적으로 존재 로서, 필요한 분이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절대적인 것이 없습니다. (모두 상대적임)

그래서, 비교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 비교가 상대적 우월감, 상실감 등으로, 상처를 주는 사회가 되어 갑니다. (대한민국 잘 살아도, 상대빈곤층)

그래서, 사람들의 삶은 불안하고 유동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적 가치관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견고한 사람이고, 그 절대적인 가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가치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대적인 사랑이 아닌, 절대적인 사랑’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무엇이냐? 우선 (1)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하신 그 전능하신 분에 대한 이야기이고, (2)그 분이 나를 사랑하시되…목숨 버려 사랑하셨다는 말입니다. (그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나를 신부로 맞아 주셨다는 변치않는 그 절대적인 이야기 입니다.]

수가성에서 예수님을 만난, 여인은 철저히 상대적이며, 최대한도로 실용적으로 살았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치를 따라,대상과 동반자를 수시로 바꿉니다.

상대를 바꾸는 사람들의 특징은 ‘비교의식’입니다.

비교를 하다 보니까, 전화회사도 쉽게 바꾸고, 단골집도 바꾸고, ….늘 바꿉니다. (친구도 바꾸고…실용적이죠?)

그래야, 이 세상은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이니까요.

어쩌면, 그것이 지구에서, 살아남는 비결이고, 지구환경의 삶입니다.

그런데, 한 분은 바꾸면 안되는 것이고, (이 분을 바꾸지 않고, 이 분에게 꽂히면…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 그 분은 전지전능, 무소 부재하신 분

이 분이 그렇게 커 보여야, 아주 안정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상대적인 가치에 큰 미련을 보이지 않게 돼요.

우리가 실패하는 이유는 절대적인 가치관을 떠나서, 상대적인 가치의 비중을 더 높이 평가하고 거기에 목숨을 걸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주 변하는 상대적인 가치를 통해서, 상실감을 자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주님 자신도 사람으로 사시는 동안, 상대적인 가치체계에 매여 있는 군중과 늘 다니시니까, 얼마나 피곤하시겠어요?

그러니까, 종종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왜? 한적한 곳을 찾으셨을까요? – 절대자를 찾는 모습이죠. (예수님에게 절대자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그렇게 생각해야 하지만, 예수님을 모델로 삼는다면, 바로, 그 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가치를 찾아서, 피곤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경종입니다. (+++예수로 한 우물파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대중과 싸우느라고 힘들고 지쳐 있는 사람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상대적인 가치를 찾느라고, 목이 마른 자들아, 내게로 와서 마셔라…내가 주는 물은 영원토록 솟아나는 샘물이다. (절대적인 예수님의 존재를 말하고 있는 것)

오늘 본문을 보니까요.

이제 2016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강력한 지침을 주는 말씀이 나옵니다.

히12:1. 이러므로(therefore)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이러므로, 가 중요합니다.

이 이러므로는 믿음장,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으로 살다가, 이제 천국에 앉은 승리한 모든 사람들을 말함.

그리고, 그 마지막 부분에서, 히11:39-40.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런데, 그들이 믿음을 지키느라고, 지상에서 고통 받고, 비참한 모습으로, 죽어간 사람들도 있었다는 말이고, 그러나, 그들이 이제는 증인이라는 말입니다.

바로, 그들을 포함하여서, 믿음 안에서, 죽어 천국의 마지막 트랙에서, 자신들처럼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반환점으로 들어오는 환영의 무리들을 말합니다.

관중 석에 있는 그 백성들이 모두 그러한 앞서간 증인들 입니다.

그 증인들 앞에서, 믿음의 경주에 있어서, 세상의 장애물과 나를 얽매이는 모든 것들을 벗어 버리라는 말입니다.

왜요? 그 믿음의 경주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여러분의 믿음생활을 방해하나요? (미움, 증오, 물질, 누구 때문에? – 용서하고 과감하게 벗어버려야..)

무엇이 얽어 맸나요? – 그것이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벗어버리고…믿음경주 하라는 말)

그리고, 다시 말씀하십니다. (벗어 버린다는 말은 소극적인 말입니다. 그것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아니, 절대로 벗어 버릴 수가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2절,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 the author and perfecter of our faith)인 예수를 바라보자(Let us fix our eyes on Jesus)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우리들의 믿음의 주(저자), 작가 그리고 우리들의 믿음을 완성시키신 분이십니다.(믿음 장 후에, 나오는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가 믿음의 창조자라는 말입니다. (행4:12…천하에 구원 받은 만한 다른이름)

믿음을 창조할 만한, 예수님의 가장 큰, 이슈가 무엇이었나요? –십자가, 십자가의 속죄, 대속, 십자가임.

 

그리고, 또 직접 행동의 모델로, 우리들의 목표로 등장하십니다. (우리 인생이 반드시 가야 할 그 길임)

인간이신 예수님도…그 분의 목표가 오로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보면, 예수님은 병을 고치신 후에도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시고 막1:35,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푼 후에도…제자들에게 한적한 곳으로 가기를 원하시고 막6:32, 귀신을 쫓아내신 후에도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눅5:16)

절대자 하나님과 대화 하시고, 기도하러 가신 것입니다.

시간이 될 때마다…군중 속에서, 피곤함을 느끼실 때, 그 분은 그 속을 떠나서, 하나님을 바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주님 밖에 없습니다. 주님으로 채우도록 우리를 디자인 하셨습니다. – 허하시면, 주님 없는증거)

그렇게 우리가 우리의 눈을 고정하고 바라 보아야 할 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Fix our eyes on Jesus)

상대적으로 바뀌는 가치는 진정한 가치가 아닙니다.

절대적인 가치가 진짜 가치이고, 그것이 진리이고, 영원합니다. (돈을 금으로 바꾸는 것도 그것임)

그 가치이신 분이 도달한 곳이, 우리가 가야 할 장소.

바로-(리키며)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인간이셨던(물론 신이시기도 했지만) 예수님도 십자가를 참으시면서, 그 치욕을 개의치 않으신 그 이유가 바로, 하나님 곁에 가기 위함이셨던 것을 보면, 그 자리는 그 자체로서,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영광의 자리입니다. (우리도 같은자리)

이 자리를 놓쳐 버리면…인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과 함께 계신 그 장소이고, 그 장소가 바로, 신부인 우리들의 장소입니다.

우리의 마지막 지점은 하나님의 보좌 곁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한 분이 계시다면,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만 생각하고, 모시고, 보고 달리면,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 곁에 가게 됩니다. (그 보좌는 최종기쁨이지만, 그 기쁨은 이 지상에서, 누리는 현재적인 기쁨이 됩니다. – 성경전체가 그 말씀임)

그것을 성경은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갈2:20, 내안에 그리스도가 삶)

다시 말씀 드리면, ‘한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을 본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분 안에서, 내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의 간증을 들으면, 그것은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발견되려 한다는 말…하나가 되는 일

금년이 바로 그러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될 수가 있어…나는 할 수 없지만…그리스도는 이미 그렇게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누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를 축복합니다.

(우리 함께 기도하실까요?)–다시,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은혜를 2017년도에 허락하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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