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sub_ment Portland Downtown, Oregon

에수님과 성전

treasure 2017.08.27 15:29 조회 수 : 64

설교날짜 2017-02-19 
본문 요1:14 
설교자 남궁진 목사 
주제  

 

구약성경-창세기와 출애굽기는 아주 중요한 책입니다.

연결시켜 보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향한, 죄로 인해서, 타락해 버린, 이 지구를 살리려고, 그 분이 예수님을 보냈다는 말입니다. (구원-죄, 총체적으로…)

모든 성경은 그래서, 바로 그 책, 인류를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서’입니다. <그래서, 그 책에는 지속적으로 점진적인 계시가 열리고, 그 정점에 계신 그리스도가 계속 암시되고, 계시되고 열립니다.> - 어떤 방법으로???

그리고, 그 분은 ‘성전’이라는 컨셉으로 계속 나타납니다. (그래서, 보면…성전이 하나님의 지속적인 관심사였고…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일상으로 아주 중요한 것이었고, 그 제사는 성전이신 예수님을 지속적으로 들어내었고, 그것은 또 ‘구속의 역사’, ‘구원의 역사’로 연결이 됩니다.

 

어떤 분들은, 성경이 이스라엘의 역사서라고 그냥, 넘겨 버립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성경을 자신들의 역사로 믿고, 2000년 동안 잃어버린 자신들의 본토를 주장하면서, 결국 그 땅에 자신들의 나라를 건설함)

사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원주민이 아닙니다.

지금의 이라크의 이주민이다. (성경의 주인공들의 많은 사람들이, 지역, 이스라엘과 연관이 없다.)

알고 보면, 성경은 그 곳에서, 출발이 되지만, 세계를 향하여 열려 있습니다. (성경은 세계인의 책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 들어가서, 시내산을 방문하고, 하나님께, 택한 백성들이 살아야 하는 지침서인 율법을 받습니다. (모세오경 율법은 주님께로 가는 지침서가 아니라, 주님께 도달한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도덕입니다.)

그것을 지킴으로 택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 받은 천국에 간 사람들이 지킬 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을 판가름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사랑의 책)

마치, 그것은 어떠한 규율을 지킨다고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바로 그 점을 말하고 있고, 그것을 위해서, ‘믿음’이라는 카드를 내미는 것입니다. – 믿음도 선물, 그 선물로 구원을 받음- 행동이 아님, 율법도 아님) 

 

그 모든 사실이 성전과 관련이 있고, 그 성전의 역사가 예수님과 관련이 있음을 밝히면서, 성경은 예수님의 이야기임을 드러내면서, 해결점으로 갑니다.

오늘 저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왜 그토록 성전을 고집하셨는가? 를 볼 것입니다.

구약 성전의 지성소는 ‘하나님이 임재’하신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그 모습과 성전에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하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광야 성전에 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성전에 목숨을 걸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성전이면 모든 것이 가능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전을 지어서, 봉헌을 하고,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음으로 인해서, 안심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의 관심은 건물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그 건물 자체를 위한 성전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성전의 마지막은 ‘예수님’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 한 예로, 지난 주일 설교 중…예수님의 공생애 시에, 요한복음 4장에서, 수가성 여인을 만난 예수님과 대화를 보면, 장소가 아닌, 영과 진리(하나님과 예수님)으로 예배하는 때가 올 것이고, 왔다고 하시면서, 주님 자신의 사역을 들어내는 것을 보면서, 구약적 예배를 넘어, 하나님과 자신을 예배로 묶으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제, 건물 성전의 개념을 넘어서시는 것입니다.

 

다시, 성막 성전시절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민족들은 출애굽 한 후 약 3개월 만에 걸쳐서, 시내산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율법을 받으면서, 성막 성전의 건축도면을 함께 받고, 광야 성전을 건축하는 데까지, 거의 1년을 지냅니다. (하나님의 관심사가 성전에 있음)

 

그리고, 그들은 그 성막을 중심해서, 3지파씩, 진을 치고, 성막에서 제사를 드리는 일이 그들의 일상이었었습니다.

`출애굽기 마지막 장 40:34-38을 보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 하늘의 불기둥, 구름기둥이 성전으로 내려 오는 장면을 절정으로 마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만을 놓고 본다면 그들은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과 함께 성전에서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결론짓기에 충분 합니다. 

성전은 적어도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너무도 귀중한 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보면,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항상 성전에 머무시겠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도 그 성전에 하나님께서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구약에서, 성전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너무 장소 성전에 의존한 나머지…마음은 어떻든지, 몸만 성전에 있으면, 되는 줄 잘못 생각함.- 예레미야는 영상2 렘7:2~4. 2.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그토록, 이스라엘 민족은 장소적인 성전을 성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신약에서 예수님은 성전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하셨을까요? 

예수님도 성전을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로서, 그리고 이스라엘의 죄를 속죄하는 그러한 장소로 취급하셨을까요?

그리고, 그러한 일들에 대한, 존경의 장소로 인정하셨는가? –어떠셨을까요?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도 물론 성전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눅2:49, 12살 때 이스라엘의 선생들과 토론하면서, 성전을 ‘내 아버지 집’이라고 하십니다. 마12:4에서, 하나님의 집, 막11:7에서, 만민의 기도하는 집, 눅18:10에서, 세리와 바리새인의 비유에서, 성전을 기도의 장소로, 마5:35에서, 예루살렘을 큰 임금의 성, 마23:21에서, 성전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로 표현을 하십니다. 마5:3절 이하에서는, 제단에 제물을 드리기 전에, 먼저 형제와 화목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렇게 존경심을 보이시는 예수님은, 일반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성전의 기능인 제사를 드리셨는가?

 

그 분은 성전에 대한 분명한 존경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구역 에서, 토론도 하시고, 가르치기도 하시고, 병자를 치료 하시기도 하셨지만, 그 분이 성전에서 기도하거나, 제사를 드리러 성전에 갔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성전의 멸망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막11:17,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고 있다고 말하고 있고, 요2:16에서는 시장을 만들고 있다고 말합니다.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죄로 인해서, 마23:37 이하에서는 예루살렘이, 막13장에서는 성전이 멸망할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 사건을 염두에 두고, 그 분은 이러한 말씀을 하십니다.

요2:19-22. 19.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예수로 선포되는 그 성전의 멸망은, 메시야로 인해서 성취가 시작이 되고, 성전은 무너질 뿐 아니라, 예수의 사역으로 그 일이 대치될 것을 말하고 있고, 또한 그것이 성취되었음을 동시에 말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마12:6에서, 마12: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또, 밀밭 사이로 지나시면서, 제사와 예배가 시작이 되는 안식을 언급하시면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십니다. 마12: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모두, 성전의 기능이 예수님 자신에게로 이동될 것을, 의도하고, 스스로 인식하시고,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종합하면, 예수님의 모든 공적 사역을 보면, 전체가 성전이 상징하는 바를 몸소, 성취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니까, 자신을 성전으로 들어내심)

그 분이 가지신 죄사함의 권세는 속죄제사와 속건제를 대신하고, 그리고 대 속죄일의 예식과 관계없이 죄를 사하여 주시는 성전의 기능을 거침없이 대치하십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 성경학자들은 신성모독죄를 붙임)

복음서에서의 그리스도의 사역을 눈 여겨 보게 되면, 모든 성전의 사역이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대치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한 결과가‘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성이 되고, 대치가 되는 모습을 봅니다.

그 분이 십자가 달리실 때, 결정적으로 성전의 휘장이 갈라집니다. (성전의 휘장과 육체를 동일시하면서…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이 무너졌다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입니다.)

또, 성전의 휘장이 갈라졌다는 말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와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의 장소로서의 성전의 기능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관련이 있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전의 사역이 결국 예수님이셨다는 것을 들어내고 있는 말입니다.

 

막14:58에 의하면, 이제는 청중들의 고소하는 말로, 성전은 인간의 손으로 짖지 않은 성전에 의해서, 대치되고 있음을 밝힙니다. (막14: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 ‘십자가 위에 유대인의 왕’

 

오늘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과 같이 요한은 1:14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육신이 되어서, 그의 백성 가운데 거하실 한 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헬, 스케노오, 장막을 치다. Dwell in, interlinear Greek-English New testament에서는 ‘tabernacled’-천막치다, 성막을 치다는 뜻입니다.)

John 1:14 “And the Word flesh became and tabernacle[dwell in] among us…”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구약 성경으로 돌아가면, tabernacle은 성막 성전을 말합니다. (성육신 주님이 우리들의 성막이 되신다.)

거하신다는 말은…보호하신다. (성육신의 의미임)

 

그런데, 오늘 말씀은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가 우리들의 장막이 되십니다.

중세의 교회들이 으리 으리한 성전을 짓느라고 고생을 했습니다. <중세의 교회의 장엄함이 지금도 남아있음, 거기에 주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임>

 

주님은 건물에 임하시지 않으십니다. (건물 상관없음)

바로 주님이 성전이시고, 주님을 모시고 있는 우리들이 성전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계신 그 분이 나를 보호하심)

주가 계십니까? – 주님이 계시면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도 성전입니다. (고전3:16)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육신이 되셨으니, 즉 성막을 치셨으니, 우리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그의 영광, 곧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았다 고 말합니다. (은혜는 베푸심, 진리는 삶의지침)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가운데서, 우리들의 삶의 정황에서, 그리스도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십니까? – 그 영광이 보이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의 영광이 보이면, 내가 은혜 안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되고, 진리의 길을 알게 됩니다.

오늘 인류의 비극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모르는 데, 있는 것이고,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함을 모르는 데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들의 처음이요, 나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 분은 우리들의 ‘장막’이고 ‘성전’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장막으로 덮고 계십니다.

믿음을 가질때, 우리는 총제적으로 불안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인생에, 꽉 채워질 때, 우리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living Words, written Words>

주님만으로 채워지도록, 합시다. <100% 믿음을 말함>

그럴 때, 지친 우리들에게 진정한 쉼이 있습니다.

이러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할까요?

성경에서 넘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나에게 적용이 되어서, 그 예수님이 나를 감싸고, 보호 하심으로 넉넉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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