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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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어디로 가는가?

treasure 2017.08.06 06:18 조회 수 : 120

설교날짜 1999-03-21 
본문 마12:46-50 
설교자 남궁진 목사 
주제  

지난주간에 저는 미국의 최남단, 멕시코 접경지역에 위치한 텍사스 주에 있는 휴스톤 침례교회의 가정교회 쎄미나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1)설교를 통하여 성도들이 변하지 않는 우리교회 뿐 아니라 현시대를 바라보면서 과연 설교 만으로 성도들이 변화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점과 

  물론 일시적으로는 변화되지만 지속적으로 그것이 지속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괴로워 하였던 점과

2)또 하나는 시대의 변천과 함께 과거의 7,80년대의 부흥회를 하면서 성령의 폭발을 통하여 군중들을 깨우치고, 하던 시대가 사라져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군중 속에서 고독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져 감에 따라(인구의 20% 정신질환-더 늘어남) 이제는 대중이 아니라 교회도 소그룹화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소그룹 소위 가정교회를 하면서 미국에서 부흥하고 있는 교회를 탐방해서 자료를 얻어 보고자 하였던 단순한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쎄미나를 참석한 충격은 기대치를 훨씬 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그야말로 들뜬 삶이었습니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는가 했더니, 그들은 그들의 삶을 숨김없이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교인 전체가 아니라 15명 안밖의 가정교회식구들과 가정교회 식구들은 그들끼리 똘똘 뭉쳐 있었습니다.

여러분 *21세기의 교회형태는 어때야 된다고 봅니까?

교회가 숫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거기에  있는 구성원들이 어떤 상태인가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비대해지면 서로간의 유대가 멀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사랑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큰 교회를 가기 싫어 합니다. 우리교회도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교회가 잘못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상대하려고 애쓰다 보니 상대적으로 사랑은 약화되기 마련이고, 진정한 사랑의 교제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늘어도 그들이 맡은 대상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최소의 단위를 그들은 “목장(Pasture)"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거기에서 생명의 삶을 나눕니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하던 사람들이 한번 신뢰관계가 형성되면 그들의 모든 것을 털어놓고, 이야기 합니다.

          

현대인들이 정신질환에 걸리는 이유는 고독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상 합니다. 사람은 더 많아지고, 복잡해 졌는데, 사람들이 고독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말만하고 싶어하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들이 없는 것입니다.  목장에 오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반은 그들의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교회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안 나와도 가정교회는 참석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목장을 이끄는 사람들은 “목자”라는 칭호를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신학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목사가 하는 일과 거의 같은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 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평신도로서 선지자 일을 한 사람들은 선지자의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예비목자가 있어서 목자의 하는 일을 보고 배웁니다. 교사가 있어서 간단하게 목원들에게 성경을 가르칩니다. 교사는 주일오후에 그 주에 가르칠 것을 훈련 받습니다.

  

가정교회가 15명을 넘어서면 분가를 합니다. 분가할 때는 목자가 한 두 가정을 데리고 나가서 다른 목장을 만듭니다. 분가한 목자는 별을 하난 달아 줍니다.

    단 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이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우리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 분은 영원을 가지신 분입니다. 이것이 가정교회의 모습입니다.

 

저는 7주간에 걸쳐서 교회에 관한 설교를 했습니다. 우리의 뇌리에서 교회를 생각하면 많은 군중들이 모이는 장소라고 얼른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니 얼른 뇌리에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것을 어디에서부터 적용하는 것인지

어디에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막연했을 것입니다.

 

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1.에베소교회: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사이를 다니시는 이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고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을 안다. 이단을 사냥한 것도 안다.

  -처음사랑을 찾으라-이기는 자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찾는 것인가?  

*처음사랑을 어떻게 찾는 것인지 참으로 막연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처음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만은 아닙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람 이단을 사냥하는 데는 바빴는데 사랑은 없었다는 것으로 미루어서 알 수 잇습니다.  그러면 어디서,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가장 가까운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나의 남편 나의 아내를 사랑하는 것도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웃의 개념은 가족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은 너무 추상적입니다. 인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적당해야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귀는 16-20000 파장 까지만 수용을 합니다. 인간이 깊은 관계를 가지고 사귈 수 있는 사람들의 한계는 고작 70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70명은 너무 많습니다.

모두가 내 친구라고 하는 사람은 친구 같은 친구가 하나도 없는 사람 입니다.   

 

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사랑의 강도는 깊어 집니다. 5-6가정이면 충분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대상을 믿지 않는 가정으로 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던 사람이 가정교회를 통하여 사랑을 깨닫고, 구원받고 그들과 계속 깊은 교제를 갖으며 천국까지 사랑을 먹으면서 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커져도 모이는 수는 같습니다. 모두가 가정교회에 속해 있으니, 가정교회의 수만 증가하는 것입니다.

그 가정교회들이 주일 모두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대 축제를 갖습니다. 가정교회를 통하여 교제가 이루어지고 함께 모이는 교회를 통하여 축제가 이루어지는 교회, 이것이 공동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우리는 사랑하는 교회를 만들 수가 있습니다.

          

사랑에 빠진 청춘 남녀는 상대방 하나로, 사랑을 만끽 합니다. 모두로부터 사랑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진정한 사랑의 방법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을 보면 대개 노총각이나, 노처녀 입니다.

우리 모두 몇 사람만 담당해서 뜨겁게 사랑해 봅시다.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면서 연습할 수 있는 곳은 무엇인가?

초대교회는 가정교회였습니다.

(본문에 예수님은 가정을 언급하십니다-누가 모친,형제,자매?)

가정교회가 시작되면 우리는 매주 모일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매주 모였습니다.

처음에는 토요일에 모였습니다.

오순절 성령이 내려온 후로는 토요일도, 주의 날(부활, 현현, 승천 하신 날)도 모였습니다. 자꾸 모여야 또 모일 수 있고, 자주 만나야 이야기 거리도 많아집니다.

오랜만에 만난 이산가족은 할말이별로 없습니다. 그저 “안녕하십니까”“안녕히 계십시오”가 전부입니다. 남북이산가족이 상봉 했을 때 별로 할말이 없어서 헤어진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만나서 이야기 하고, 기도하면서 문제가 해결되고

교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가장교회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며 사랑을 체험하는 가정교회를 만들어 봅시다.

그렇게 하여 처음 사랑을 되찾는 진정한 가정교회가 모여서

시온교회를 이루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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