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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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새생활(1)

treasure 2017.08.05 08:27 조회 수 : 151

설교날짜 1997-10-19 
본문 요1:12 
설교자 남궁진 목사 
주제 새생활 시리즈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이란 단순한 어떤 행위의 표준이나, 윤리 규범이나, 또는 의식적인 종교생활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통하여 인간에게 그 자신을 나타내신 살아 계신 창조주 하나님과의 생생한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하여야 그와 생생한 개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의 생활에서 죄를 고백하는 방법을 배워 실천함으로 순간 순간 하나님과의 교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생활은 곧 풍성하고 충만한 생활을 누리는 삶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영접했을 때 우리는 그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였다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가지는 공통적인 의혹이 있게 됩니다.

만약 ‘내가 죄를 범하거나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을 할 때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하는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건가?“ ”예수님께서 나의 삶에서 떠나시는 걸까?“

그와 같은 해결책은 하나님과 우리와이 관계와 교제의 차이점을 구분하므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1.관계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와 교제의 차이점은 우리 가정에서 부자의 관계를 들어 설명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정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그 아기는 그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왜냐하면 그 아기 안에는 아버지의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제 아버지의 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자라서 집을 떠나기로 작정을 하고 아버지를 노엽게 하는 많은 일들을 하고는 집을 뛰쳐나갔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는 여전히 그 아버지의 아들일까요? 아닐까요? 그래도 그는 여전히 그의 아들입니다. 아들의 행위에 관계없이 부자관계는 지속됩니다. 부자관계는 영원 불변한 것입니다.

2.교제

그러나 그들 부자 사이의 교제는 어떻게 되었을 까요? 아들의 행위로 인하여 부자 사이의 교제는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이 아들이 아버지와이 교제를 회복하려면 무엇을 하여야 할까요? 그는 아버지께 나아가서 그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영원 불변 합니다. 우리는 그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잘 되기를 학수 고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자녀들이 죄를 범하거나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들을 행할 때 하나님과의 교제는 중단되고 맙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디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잘못을 시인하고 그의 용서하심을 받아 들여야만 합니다.

사도바울은 3가지의 사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고전 2:14-3:3 “(14)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15-16)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3:1-3)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1)14절-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도, 도한 교제도 없는 그야말로 현재는 지옥으로 달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도무지 영적인 일들을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미련하게 보이지 때문입니다. (예,1.주일날 고리타분하게 교회에 가느니 차라리 낚시나 가는 것이 좋지 아니한가? 2.눈에 보이는 것만 가장 중요합니다.- 예, 돈, 물질, 향락 등)

(2)15절-영에 속한 사람은 그리스도 중심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는 물론, 매일매일 그 분과 교제를 하는 사람입니다.

(3)그런데3:1-3절-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죄 때문에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 입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맺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제는 가지고 있지 않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것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 죄를 고백하므로 가능합니다. 고백에는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동의, 둘째는 감사, 셋째는 회개입니다. 죄를 고백할 때 우리의 죄를 지적해 주시는 하나님께 동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죄를 이미 십자가상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용서받았음을 믿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고백에는 또 회개가 포함됩니다.

 

회개는 우리의 태도를 바꾸는 것인데 그 결과로 행위의 변화가 뒤따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죄를 범했거나 자기 마음의 중심을 자기가 다시 차지했을 때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곧 교제를 회복해 주신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통계에 의하면, 국민의 반 이상인 2억이 넘는 인구, 최근에는 인구의 97%이상이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인들을 보면 미국이 도덕적 영적으로 부패함을 보고 있습니다. 인구의 절반이 가정생활에 실패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에게 놀랍고도 풍성한 삶을 약속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 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아갈 때 우리의 하루하루는 경이와 의의와 목적과 보람으로 가득 창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갈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삶, 즉 승리와 기쁨 그리고 우리의 구주를 향해 풍요하게 넙치는 삶에 대해서 아무것도 무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귀찮고 견디기 어려운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모든 고통과 핍박과 투옥을 참아내며 끝내는 우리 주님을 위해서 순교하신 사도바울은 ‘환란중에도 즐거워하나니’(롬5:3),‘항상 기뻐하라’(살전5:16),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고 말했습니다. 기쁘든지 슬프든지 풍요하든지 부족하든지 건강하든지 않든지 자유롭든지 박해를 당하든지 간에 우리 주님은 우리를 보증하시는 것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요14:27),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 하리라’(히13:5),'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

기독교에는 아니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앞에서는 “예”(Yes)만 있습니다. 긍정만 있다는 말입니다.

사도바울은, 빌4:13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American Standard:  I can do all things in him that strengtheneth me.

New International:  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안에 있으면 그의 능력으로 무엇이든지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그리스도가 밖에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저와 여러분 속에 지금 그리스도가 계신가요? - 진지하게 물어 봅시다. 계시다면  주와 함께 먹는 기쁨을 믿음으로 누려야 할 것입니다. 함께 즐거워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삶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과의 관계는 설정되어 있는데 그 분과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매일 좌절하고 고통 당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기를 바라는 비유적인 이야기가 한편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기의 유산을 미리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 몫을 주었습니다. 그는 짐을 꾸려 멀리 낯선 땅으로 아버지를 떠나 여행을 가서는 모든 돈을 순식간에 다 써 버리고 말았습니다. 돈을 다쓰니 모여들었던 친구는 다 떠나고, 그곳에 기근은 들고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정신이 버쩍 들은 아들은 아버지이 품이 갑자기 그리워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곁에는 그 품꾼들도 굶지는 않을텐데” 그래서 그는 가서 아버지에게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부디 저를 품꾼의 하나로 써 주십시오.”

 

그는 집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을 아버지께로 향하여 아버지 집이 보이는 동구 밖을 들어설 무렵이었옵니다

누가복음 15:20-24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아들이 집을 나간 후 하루도 편한 잠을 자보지 못한 채 매일 매일 기다리던 아버지는 그날도 아들이 오지 않나 하면서 먼 동구 밖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남루하게 차린 아들을 보자 그는 단번에 알아차리고는 얼싸 않고 하인들을 시켜 잔치를 베풀도록 하신 것입니다.

분명 그는 아들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피를 함께 나눈 자식이 아무리 자기를 떠났다고 해도 아버지는 그를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설사 하나님을 떠났다 해도 그에게로 돌아오는 순간 그 분은 맨발을 벗을 정도로 환영을 하시면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로 작정하시는 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어떤 모양의 죄악으로부터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돌아오기만 하면 그분은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려고 계획을 하고 계십니다. 의심하지 마시고 순간 하나님과 교제를 새롭게 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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