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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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지상생활

treasure 2017.08.05 12:56 조회 수 : 118

설교날짜 1997-12-14 
본문 요3:1-8 
설교자 남궁진 목사 
주제 대강절 

 여기 이와 같은 작자미상의 글이 있습니다.

1900여년전 인간의 생명의 법칙과는 다르게 한 사람이 태어났다. 그는 여러 곳으로 여행도 하지 않았다. 단 한번 그가 살던 나라의 경계를 넘었을 뿐이다. 그것도 그가 어린 시절, 망명하던 때의 일이다. 그는 부도, 감화력도 지니지 않았다. 그의 친척들은 뚜렷하게 두각을 나타내지도 않았고  훈련을 받거나 정규적인 교육을 받지도 않았다. 어렸을 때에는 임금을 놀라게 했고 소년 시절에는 박사들을 당황케 했다. 장성한 후에는 자연의 법칙을 지배했고 바다 위를 포장도로인양 걸었고, 바다를 잠잠케 했다. 그는 약도 없이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었고 그의 봉사에 대한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가 결코 책을 쓰지 않았으나 각 나라의 도서관에서는 그에 관해 쓰여진 책을 다 보관할 수가 없었다. 그는 결코 작곡을 하지 않았으나 모든 작곡가들이 이룬 것 이상으로 주제를 풍부하게 했다. 그가 대학을 설립하지 않았으나 모든 학교를 다 합쳐도 그의 앞에서 학생수가 많다고 자랑할 수가 없다. 그는 결코 군대를 규합하지도 않았고 병사를 소집하지도 않았고 총을 한방도 쏘지 않았으나 어느 누구보다도 지원병을 많이 가졌고 그의 명령 하에서는 총을 멘 많은 반역자들도 한 방의 총도 쏘지 못하고 굴복하고 말았다. 의술을 배워 본 적도 없었으나 곳곳의 많은 의사들보다도 더 많은 상한 심령들을 고쳐 주셨다. 매주일 상거래들이 중지되며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찬양을 돌리기 위해 예배하는 집회에 모인다. 과거에 그리이스와 로마에서 자랑스러운 정치가들의 이름이 많이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과학자들과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이름이 많아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렸으나 이 사람의 이름은 영원히 살아 있으며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널리 알려 지고 있다.  그의 십자가 사건과 이 시대 사람들과는 1900년이란 차이가 있지만 그는 아직도 살아 계신다. 헤롯이 그를 꺾을 수 없었고 무덤도 그를 붙잡아 놓을 수 없었다. 하나님으로 선포되었고, 천사들이 경배하였고, 성도들이 찬양을 하였고, 마귀마저 두려워한 그는 살아 계신 인격적 그리스도로서, 우리의 주님과 구세주로서 하늘영광의 최상에 지금도 계신다.   -작자미상-        

       “그는 외딴 마을 한 시골 여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마을에서 자라면서 30세까지 목수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사회적인 활동은 고작 3년이 전부였습니다. 그는 책을 쓰지도 않았고, 사무실을 두지도 않았으며, 가정도 가지지 않았고, 가족도 거느리지 않았습니다. 대학을 다니지도 않았고, 대도시에 발을 들여놓은 적도 없었읍니다. 그가 낳은 곳에서 200마일 밖을 벗어난 적도 없었고 위대함을 과시하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자신 외에는 신임장이 될만한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가 아직 젊으셨을 때, 민중들은 그를 배반하고 그의 친구들도 다 도망해 버리고 그 중 하나는 그를 부인해 버리고 그는 그의 원수의 손에 넘겨져 조롱과 심문을 받았습니다. 그가 두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그의 사형 집행인들은 그가 이 세상에 살 동안 오직 유일한 소유였던 그의 겉옷을 제비 뽑아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체는 십자가에서 내려, 한 친구의 동정으로 빌린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20세기가 흘러가고 가고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아직도 그는 인류의 중심체이시고 행진 대열에 앞장선 선봉이심을 부인할 분은 아무도 안 계실 것입니다.  이제까지 행군했던 육군과 해군, 소집됐던 국회, 다스렸던 왕들, 이 모든 것들도 고독한 일생을 살고 간 한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큰 영향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10단계교범 p.51)

      

       예수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존재하고 살아진 어떤 사람들과 분명히 다른 그 어떤 것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살아있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이 수용할 수 없을 정도의 유명한 말들을 하고는 했습니다. 그것을 이해 못하는 어떤 사람들은 그를 “신성을 모독했다”라고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이런 능력이 어디서 오는 것인 가라’고 탄복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한 인간으로서 이 세상의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실현시키려고 오셨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로 인간들이 하나님을 알만한 작은 양심이 있기는 있어도 자의로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임을 아시는 하나님은 속죄의 양으로 The Only Son(독생자)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가지고 오신 예수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사람들의 중생의 문제였습니다.

 

1.그 분은 중생이 관심사였읍니다.

       다분히 신학적인 복음서 요한복음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오늘의 본문 내용에 예수님과 또 다른 한 인격의 진지한 만남의 장면이 나타납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사두개인들과 함께 정통적인 종교인들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현대로 말하면 국회의 지위 격인 신헤드린 공회 회원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종교라는 굴레를 빙자하여 형식과 가식에 치우쳐 있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예수그리스도는 가차없이 일격을 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결한 인품을 지닌 이 정치인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면서도 그를 흠모하고 “저 분에게 무엇인가? 있음”을 알아 차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인 입지는 그를 공공연히 찾게 만들지를 못했습니다. 그는 밤을 택하여 예수께 찾아왔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예수님이 행하셨던 기적과 표적을 언급하면서 그를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으로 호칭을 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얼른 그의 영적 상태를 알아차리고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고 말을 하셨습니다. Born Again 한다는 말입니다. 육체적 출생을 통하여 한 인간이 태어나듯, 영적인 존재,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적으로 출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의 필요성이 무엇입니까?  인간들을 거듭나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 기타 모든 것들을 가졌었다고 해도 중생한 사람만이 체험하는 하늘나라를 소유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14:11)” 하셨습니다. 내가 행하는 기적을 통하여 중생의 믿음을 가지라는 말이며 중생이 무엇보다 귀중하다는 말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수양에 대하여, 혹은 학문연구에 대하여 말했다면 그는 충분히 이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를 말하니 이해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9-10]“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요한복음 3:6-7]“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중생은 접붙임의 원리입니다. 수양의 원리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접붙임의 원리는 성향이 다른 개체를 같은 개체로 만드는 원리입니다. 세상의 종교는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뼈를 깎는 수련을 통하여, 또는 해탈의 경지에 들어가기 위하여 속세를 떠나서 산 속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것은 점진적인 변화의 과정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리스도와 접붙이는 순간에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입으로 시인하는 그 순간 이미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하나님은 이 껍데기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새로운 생명에 대한 애착이 너무 강하시기에 이전 것은 생각지 않고 새로운 생명 덕택에 모두를 새것이 되었다고 함성을 지르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거듭나셨습니까?  아멘!

 

2.그 분이 하신 말씀은 누구의 말보다도 간결하고 힘이 있습니다.

        Aberdeen Uiversity의 Hunter 교수는 “죽음으로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새롭고 복받은 관계를 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그는 도대체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 어떤 사람도 그러한 주장을 할 수 없을 것이며 만일 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랍비 Ducann은 “그는 의도적으로 1.인간을 기만했거나, 2.자기기만에 빠졌거나, 3.아니면 신이다.” 라고 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1.[요8:12]“나는 세상의 빛니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2.[요10:11]나는 선한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치거나와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3.[요8:58]“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었느니라”

4.[요 11:25]“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5.[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지상에 살다간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은 이야기를 했는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 외에도 “나를 따르라”, “내게 배우라”, “내게로 오라”,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만약 이와 같은 말들이 거짓이었다면, 그는 그가 이 세상에 사라진지 오래며, 2000년 지난 오늘날 거짓말쟁이로 낙인이 찍혔을 것이며, 지금쯤 까마득한 잊혀짐 속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정말 신의 아들이며 우리의 생명을 부탁해도 아낌없는 분임에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이 당당하게, 자신 있게 현세와 사후를 밝히 말한 사람이 지상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무덤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살아 계심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영향력이 차츰차츰 사라집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은 영향력을 계속 행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그는 지금 우리를 통하여 제2의 사도행전을 쓰고 계시며 우리 모두는 그 저자들입니다.

 

       그 그리스도를 영접한 분들은 생명 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이 강림절기에 그리스도의 지상생활을 음미하며 그리스도의 창조와 기적의 삶이 새롭게 태어난 우리들에게 동일하게 일어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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