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sub_ment Portland Downtown, Oregon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treasure 2017.08.05 13:03 조회 수 : 168

설교날짜 1997-12-28 
본문 계3:14-20 
설교자 남궁진 목사 
주제  

       1923년도 시카고의 Edgewater Beach 호텔에서 매우 중요한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아홉 명의 인사들이었습니다. 성공의 축제 파티를 연 것입니다.

그 모임후 25년이 지난 후, 이들이게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가?

1)강철회사 사장 Charles Schwab씨는 파산하여 죽기전 5년 동안은 빚으로 살다가 죽었고, 2)공익회사 사장 Samuel Insull은 법정으로부터 도망 다니다가 외국에서 돈 한푼 없이 죽고 말았고, 3)개스회사 사장 Howard Hopson씨는 정신 이상자가 되었고 4)소맥회사 사장 Arthur Cotton씨는 많은 부채를 지고 외국에서 죽었습니다. 5)뉴욕 증권거래소 사장 Richard Witney는 싱싱 형무소에서 겨우 풀려났고, 6)정부각료였던 Albert Fall씨는 특사로 출옥하여 집에서 죽었고, 7)Wall Street의 기장 큰 주식의 판매자였던 Jesse Livermore, 8)특허 공사 사장 Ivar Kruger, 그리고 국세청산은행장 Leon Fraser씨 등 세명은 모두 자살로 일생을 끝마쳤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가 생계를 이어나가는 기술은 알았으나 아무도 “참 사는 방법”은 몰랐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이란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망망 대해에 떠다니면서 우리는 바다 속에 있는 여러 가지 고기들을 낚아서 아름다운 요리를 해 먹으며 인생을 살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잘 먹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정처 없이 대양을 떠돈다고 생각이 된다면 불안하기 그지없을 것입니다.  배는 항구가 있어야 가치 있는 배고, 차고가 없는 자동차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리 비싼 비행기일지라도 비행장이 없으면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한 것입니다. 갈곳이 없는 것처럼 비참한 것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곳은 많다 라고 자위를 합니다.  여하튼 갈곳이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갈곳이 없는 사람들, Homless People은 정말 비참 합니다.

       긴 인생의 여정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갈곳이 있어야 참다운 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한해를 달려 오셨나요. “숨가쁘게 달려 왔어요. 미국이란 나라는 한번 올라타면 돌아가는 쳇바퀴와 같아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쉴 사이 없이 돌고, 돌고, 돌기에 겨를이 없어요” 라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이는 서산에 걸려 있게 되고 후회스러운 삶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만족한 삶과 만족한 인생을 마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적어도 4가지는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4P-Purpose, Power, Peace, Pardon***

1)진정한 목적(Purpose)이 있어야 함

       누가 목표지점에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을까요? 숙련된 선장이요, 운전사요, 비행사입니다. 우리 인간세계에 우리를 안전한 항구에 인도해줄 선장이 누구인가요? 과거에 누구였으며 지금은 누구인가요? 대통령인가요? 지구가 부서지면 모두가 재가 될 인간들이 아닌가요? 어디에서 우리를 진정한 목적을 향할 인도자를 택할까요?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에는 없습니다. (Ex. Tower Ring)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은 인생의 바른 목적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은 거친 바다 위에 닻도 없고 키도 없이 물결치는 대로 떠다니는 배와 같습니다. 아무리 똑똑한 학생일지라도, 사업에 성공한 사람일지라도, 아무리 인기 있는 운동선수일지라도, 어떤 직업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면, 인생의 진정한 목적을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신을 위해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성 어거스탄은  “오! 하나님, 주님은 주님을 위하여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우리의 안식처를 얻을 때까지 우리 마음은 평안을 얻지 못하나이다”

       유명한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H.G Wells는 61세에 “나에게는 평안히 없다. 나는 인생의 종점에 서있다”

우리도 이와 같은 고백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밖에 있을 때 말입니다.

       시인 Byron은 “내 인생은 만추의 낙엽이라. 꽃과 열매는 다 떨어지고 벌레와 낡음과 비애만이 내 것이 되었구나” 풀과 인생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시인의 입에서 이와 같은 말이 나올 때 우리의 인생은 어떠할까요? 

       문학의 천재 Thoreau는 “대부분이 인간이 고요한 절망 속에서 살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인류 만화가 Ralph Barton은 죽기 전에 “나는 친구가 많았고, 성공도 했으며, 어려움이라곤 별로 없었다. 아내를 마음대로 바꾸었고, 이 집 저 집 옮겨 살아 봤으며, 여러 나라를 여행도 해 보았으나 단 하루도 마음의 피로가 그친 날은 없었다. 하루 스물네시간을 메꾸는 일에 진력이 났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은 여기에서 별반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한곳에 어떤 이세상의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영적 영역이 있습니다. 그곳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만이 채워 질 수 있는 부분입니다. 진정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분이 나를 만드신 목적을 보여 주시기 까지는 만족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때까지 산 어느 누구도 이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종교도, 철학도, 어떤 사람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중의 가장 걸작품입니다. 어떤 건축 청부업자가 건축기사의 청사진을 참고하지 않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세운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인간을 큰 목적을 위하여 창조하신 위대하신 건축기사에게 먼저 우리인생에 대하여 의논하려 하지 않고 우리의 뜻대로 살아가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성경은 시37:23에“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2)진정한 힘(Power)이 있어야함

       인간의 힘은 날로 쇠하기 마련입니다. 지식도 나이가 들면 그 힘을 상실하고, 건망증이 심해지니 자신에 대한 자신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그래도 패기로 버티었는데 이제 나이가 드니 무엇을 새로 시작한다는 것이 정말 어렵게 되어 집니다. 이때가 되면 무엇인가 극히 자신에 대한 비애감이 찾아오는 시기입니다.

       1)세상을 놀라게 하면서 권투계의 왕자로 군림했던 알라신을 믿는 알리가 중풍병 환자로서 애틀랜타 올림픽 성화를 올리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진실한 크리스챤 죠지 포먼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노장 죠지는 최근에 아들같은 젊은 친구와   싸워 이겼습니다. 죠지 포먼은 경기가 끝난 후 “이 승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초자연적인 삶입니다. 그리스도가 초자연적인 분이기에 그 분을 영접한 분들은 모두 초자연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 사람들은 한번 넘어지면 그냥 넘어져 있으나 우리는 홍수환같이 4번 넘어지고 5번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안된다고 해도 우리는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4:7-9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능력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 분이 내 중심에 들어오셔서 내 삶을 살아 주시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모든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 분이 능력을 주시는 분이며 우리는 그 분이 우리를 통하여 능력을 행하시는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3)진정한 평화(Peace)가 있어야 함

       교통 통신의 발달은 인간의 삶을 아주 편리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세계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되었고, 세계 어느 곳이든지 단 몇 초이면 편지를 보낼 수 있으며, 방안에서 은행계좌를 추적하고 모든 Bill을 컴퓨터를 통하여 방에서 보내고, 컴퓨터 키보드를 통하여, 주식을 투자하고, 물건을 구입하는 시대가 되었읍니다. 이제 2000년대에는 지구  어느 곳이든지 하루에 갔다가 그날 올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시대가 참 살기 좋아 진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옛날에는 오래 걸려서 하던 일은 단 몇 시간에 할 수 있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겼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더 각박해 지고, 조급해 지고, 마음의 평강은 사라져 버린 게 사실입니다.

       결혼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미국에서 이혼율이 10명중 5명이라는 통계를 아십니까?  미국인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혼을 하면 보통 원수 사이같이 변해 버린다. 그런데 당신들은 안 그런 것 같다. 아주 사이가 좋아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게 아닙니다. 자기들도 그렇답니다. 그러나 자녀들의 교육이 걸려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만난다고 했습니다. 미국 초등 학교에 진짜 엄마 아빠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마음에 만족이 없기에 그들이 헤어집니다. 여러 사람을 만나보아도 그것이 해결되나요?  그런데 부부가 다 그리스도인이며 매일같이 성경을 읽고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가정의 경우 1000:1의 이혼율을 보이고있습니다. 2:1 과 1000:1 얼마나 큰 차이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누가 감히 그리스도 없이 이러한 도박을 한단 말입니까? 내가 내 마음의 왕좌에 앉아 있으니 나와 결혼 상대자의 마음이 싸워 알력이 불가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 그리스도가 계신다면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과 대항하여 싸우지 않고 거기에는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4)진정한 용서(Pardon)가 있어야 함

       죄가 없을 때 참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죄 없는 떳떳한 사람은 당당히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악이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편히 잠을 잘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도스또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서 그는 인간에게 내재해 있는 죄에 대하여 고발을 합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 [라스꼬리니꼬프]는 자기 동네에 사는 돈 많은 전당포 주인노파가 사회의 피를 빨아먹는 무익한 존재라고 판단하여 그의 돈을 빼앗아 사회에 공헌해 보고자 그 노파를 죽입니다. 노파를 죽이면 그것으로 괞 찮을 줄 알았는데 그때부터 그는 공포와 죄책감에 사로 잡혀 평생을 비참하게 마치는 것을 그린 소설 ‘죄와 벌’  그가 그렇게 죄책감으로 산 자체가 벌을 받은 것입니다.  죄는 인간에게서 평강을 앗아갑니다. 라스꼬리니코프와 같이 우리는 모두 죄인이 아닌가요? 누가 이 죄악의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건져낼수 있을까요?

요일1:10에“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에서 그치지 아니하시고 적극적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사1:18에“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어느 누가 이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오직 하나님 한 분 이셨습니다. 지구상에 왔다가 간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그분과 같이 살다가 갔습니다. 지금도 그 분은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십니다.

그 분들은 모두 살아 계신 예수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삶의 목적과, 진정한 힘과, 평강과, 용서를 체험케 하셨고 그들은 즐겁게 세상을 끝맺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라오디게아 교회는 세상에서는 아주 풍요로운 교회였고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했습니다. 겉모양은 남부럽지 않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보니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계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밖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이 안 계시면 너나 할 것 없이 참 만족을 누리고 살지를 못합니다. 잠시동안은 만족이 있는 것처럼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 더  길게 만족을 누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어우러져 먹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결국 곤고, 가련, 눈먼 것, 벌거벗은 것뿐입니다.

 

       또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97년도는 이렇게 지나갔읍니다. 98년은 어떠하시렵니까? 또 한해를 자신을 잃어버리고 사시렵니까? 일어납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희망찬 새해를 진정한 목적을  가지고, 나의 힘이 아닌 그가 주시는 독수리의 힘으로, 염려 없는 평강으로, 하나님의 적극적인 용서를 체험하며, 한해를 승리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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