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sub_ment Portland Downtown, Oregon

풍랑 중에 계신 예수님

treasure 2017.08.27 11:14 조회 수 : 68

설교날짜 1999-05-16 
본문 마14:22-33 
설교자 남궁진 목사 
주제  

갈릴리 바다 북편에 아담한 어촌이 있습니다. 가버나움이라고 부르는 어촌을 중심하여 예수님의 공생애는 시작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대부분, 그곳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들이었고, 북쪽에 있는 백두산 만한 높이의 헐몬산에서 눈이 녹아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타고 줄기차게 흘러 내라는 물로 북쪽의 갈릴리 호수는 황금어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지역은 고기 비린내가 나고, 제가 갔을 때도 가짜 낚시를 던졌는데 큰 고기를 잡았습니다. 북쪽에 평평한 작은 야산이 있는데 그것이 5000명을 먹이신 벳세다입니다.

 

  1세기 당시의 로마는 전성기였고,  유대 민족은 로마의 식민지로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어려운 형편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농사를 지어서 곡식을 생산하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좋은 곡식은 다 로마로 가져가고 유대 사람들은 거의 연명이나 할 정도로 어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갑자기 등장한 능력의 예수님을 보면서 민중의 마음은  에수님에게 쏠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민족을 보시면서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오사 그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겼다고 또는 민망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도취되어 있기가 일수 였습니다. 배가 고푼 즐도 모르고 말입니다.

  마침 어떤 소년이 자기가 먹으려고 준비해 가지고 왔던 보리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가 있는 것을 알고 이 사실을 말씀 드렸더니 그 모든 사람들은 떼를 지어 50명씩 흑은 100명씩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신 다음에 주님이 이 떡을 가지시고 나누어주시고 생선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다 배부르게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차게 거두었고 그때 먹은 사람이 남자 장정만 오천명이 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린애들과 여자들의 숫자를 합하면 아마 만 명이 훨씬 넘었을 것입니다.

  보리떡 다섯 덩이 생선 두 마리를 가지고 만명 이 넘는 사람이 배부르게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았다고 하니 이 것은 문자 그대로 기적입니다. 

  이 일이 있으신 후에 예수님은 즉시 제자들 을 재촉해서 자기가 사람들을 돌려보낼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람들이 다 돌아간 후에 기도하시기 위해 산으로 가셨습니다. 

 

  왜냐 하면 이런 분을 이 나라의 왕으로 세우게 되면 이 나라 식량 걱정이 없겠구나 해서 억지로라도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피해서 기도하러 가시게 되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들 나름대로 만일에 우리 선생님이 이 나라 민족의 왕이 된다고 할 것이면 틀림없이 우리가 한자리씩 차지하게 될 것인 데 하는 마음속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되신 예수님은 그들을 멀리 떠나서 바다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했습니다.  날이 저물어 제자들이 탄 배는 바다 가운데 있게 되었고 애수님만 산에 흘로 남아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헐몬산에 있는 사철 눈이 덮혀 있기 때문에 찬바람이 요단 계곡을 타고 내려 불게 되면 갈릴리 바다는 갑자기 거센 물결이 일곤 합니다. 이렇게 갈릴리 바다의 폭풍은 갑자기 들이닥치고 맹렬한 것이 그 특징이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 바람이 거슬리므로 제자들이 노를 저었다.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는 갈릴리 바다에서 자란 사람이 여럿 있었습니다. 어부 출신인 베드로와 안드레 요한과 야고보 가 전부 그런 사람들 아닙니까? 그들은 누구보다도 갈릴리 바다의 형편을 잘 아는 사람이요 더구나 배를 처리 해 나가는 기술도 누구한테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사람이 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힘과 지식, 기술과 경험만 가지고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 때가 마침 밥 사경쯤(새벽3-6시) 되었다고 하였는데 매우 깊은 밤이었습니다.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이 바람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시 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유령이 나타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무섭고 떨렸겠습니까? 이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 버리고 말았습니다. 저희가 다 예수를 보고 놀랐습니다. 이때 주님은 "내니 두려워 말라“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그 노한 바다 물결이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제자들이 왜 무서워했습니까? 이는 저희가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분하여졌습니다 라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다 부족하고 약하기 때문에 지난 일들을 잊어버리기를 잘합니다.

  더구나 가슴 아팠던 일은 잘 잊어버리지 아니하지마는 좋은 일, 감격스러웠던 일은 얼마 안 가서 잊어버리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을 보세요.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고생하던 것, 무엇으로 어려움을 다 표현할 수가 있었습니까? 그런 가운데 저희가 울고 부르짖어 서 하나님이 저희의 눈물을 보시고,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의 우고를 아셔서 종살이하고 있던 애굽에서부터 하나님 의 종 모세를 통해서 끌어 내시게 되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을 향해 나가는데 홍해가 가로막히게 되 었습니다. 뒤에는 바로 왕이 보낸 근위대가 뒤쫓아오고 있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자손이 무섭게 생각되어서 여호와께 부르짖고 모세를 향해서는 원망을 합니다.  애굽에는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서 우리를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우리가 뭐라고 했어요. 우리를 버려 두라고 우리가 애굽 사람 을 섬길 것이라고 하지 아니했소.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이 광야에서 이렇게 나와 죽는 것보다는 솔직히 낫지 않소. 하면서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고 대들게 되었습니다. 그때 모세는 백성들을 향해서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들 또 다시 영원히 보지 못할 것이로다. 하나님 이 너희를 위해서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 때 큰 동풍이 밤새도록 불어서 바닷물이 물러가고 물이 갈라져서 바다가 마른땅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좌우에는 물이 벽이 되어 높이 서 있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무사히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되니 뒤에서는 바로 왕의 병력이 뒤쫓아옵니다.  그 때 모세가 다시 손을 들어 바다 위로 내밀자 따라오던 애굽의 군대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바닷물이 다 삼켜 버리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14장 마지막 부분에 보면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신 그 은혜를 보았으므로 그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했습니다.  그리고 15장에 보면 그 은혜를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여 노래한 대목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장 16장을 보면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말하기를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간 옆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너회가 이 광야로 우리를 끌어내서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구나 하면서 모세를 또 원망하고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바로 이것이 사람입니다. 그처럼 감격해 하고 좋아하던 때가 바로 엊그제였는데 오늘 좀 어렵다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두려워하는 게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바로 그날 저녁에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개와 생선 두 마리로 그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고도 남게 하는 기적을 보고 감격했는데 몇 시간이 지나지 못해서 세찬 바람과 물결이 밀려온다고 두려워 떨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에 그들의 마음이 그만 둔해지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크다는 사실은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가운데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하기 어려운 처지에서 고민하는 분 흑 계십니까?

  과거에 그와 같은 자리에서도 건져 주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와 주셨습니다.  이 말씀의 배후에는 지금 여기까지 도와주신 하나님께서는 장차 거기까지도 도와 주시겠다는 약속이 내포되어 있다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나를 도와 주신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는 사람은 지금 어떤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두려워하거나 겁내거나 원망해서는 안 될 것 입 니 다. 

 

제자들이 왜 두려워했습니까?

예수님과 멀리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바로 보지 못하고 주님이 오시는 것을 유령으로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물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주님은 그들을 안심시켰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너무 감격해서 '만일 주님이시거든 저를 명해서 물위로 걸어오라 하세요'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주님이 오라 하니까 베드로가 성큼 배에서 내려서 물 위를 걸어서 예수님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게 되었습 니다. 파도를 보고 무서워 졌습니다. 예수님이 보일 때는 예수님을 보고 믿음 가지고 앞으로 물 위로 걸어 나갈 수가 있었던 베드로가 파도 때문에 예수님이 안 보이고 물결만 보이니까 그만 겁이 나고 무서워졌습니다.  우리에겐 주님이 멀어지면서 무서워 집니다. 겁이 납니다. 무서운 생각이 드는 순간 베드로는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무서워지면 물속으로, 세상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여러분 언제나 주님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물결이 높을수록 주님께 더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물결이 높아도 물결 때문에 주님이 안 보여도 물결 뒤에 주님이 계신 것을 믿기만 하면 절대로 빠지지 않습니다. 주님 가까이 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무서워하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무서워서 유령인줄 알고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유령이 아닌 것을 가르쳐 주셨숨니다. 오늘 주신 이 말씀에 보면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놀라 유령 이라 하여 무서워 소리 치는 제자들에 게 즉시 일러 가사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다. 안심하라. 이 얼마나 우리에게 친근감을 주는 말씀입니까? 생소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서 거기에서 “나요” 그런 사람 있습니까?

  사랑하는 남편이 집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합니다. '여보세요' 하고 저쪽에서 물어윰니다. '누구세요' 합니다. '나는 누구, 누구요' 하고 이름을 댑니까? 그런 남편 있어요? 없어요. “나”요 한 마디로 통합니다. 왜냐 하면 가까이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나다' 하는 말씀만 해도 아하 예수님이구나 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예수님과 가까워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사울이 살기가 등등해서 다메섹성에 예순 믿는 사람들 이 숨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가지고 대제사장으로부터 다메섹의 여러 회당 에 갈 공문을 청해서 예수 믿는 사람을 만나면 누구든지 결박해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다메섹성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강한 빛이 비추는 것을 보고 사울이 땅에 엎드렸습니다. 하늘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그 때 사울이 뭐라고 했어요? '주여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대답하셨습니다. 여러분중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주님으로 알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이런 복을 다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나는 선한 목자라 하시면서 내가 내 양을 알고 내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선한 목자가 되시는 우리 주님께서는 그의 양인 우리의 심령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얼른 찾아오십니다. 양은 오목한 것을 좋아해서 편안한 자리에 눕다가 그만 벌렁 나자빠지게 되면은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일어나지를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자는 언제나 양무리를 보살피고 있다가 자빠져서 발버둥치고 고생하는 양을 보게 되면 얼른 가서 붙들어 일으켜 자빠진 자리에서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워준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니할 때 양은 흔자서 자라서 네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안달하다가 지쳐서 죽어 버리고 만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지 아니하시면 바다에 익숙하고 파도와 바람을 잘 극복하는 경험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로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어서 결국 괴로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술과 힘 그리고 경험의 한계에 부딪힐 때 어떻게 할 바를 몰라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 바로 주님께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해 주십니다. 보십시오. 제자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주님 이 보시고 계셨습니다. 주닙이 내가 고생하는 것 다 지켜보고 계십니다. 가장 곤란할 때입니다.  손들 수밖에 없는 때입니다. 바로 주님 이 찾아오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가장 필요할 때, 고난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찾아오십니다.(열두해를 혈루증) 주님은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의 기술이나 경험이나 지식이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 가지고, 기술 가지고 못하는 한계에 이를 때가 있습니다. 힘이 없고 무서워 떨고 있는 우리에게 힘으로써 함께 해 주시는 위로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주님이 보이지 않아 믿음이 흔들려 불속으로 빠질 때 빠지기 전에 베드로처럼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때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즉시 손을 내밀어 붙잡아 건져 주십니다. 믿음이 적은 자요 왜 의심을 하는가. 여러분 왜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의심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우리를 돌보고 인도하십니다. 잔잔한 때만 아니라 풍랑 속에서도 인도하십니다. 사랑 안에는 두려옴이 없습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좇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합력해서 소원을 이루시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활 환경이 풍랑이 일어나 닥친 갈릴리 바다 같이 불운한 것입니까? 그래서 무서워하고 겁이 난 분은 안 계십니까? 지금도 주님은 여러분 당하는 고민스러운 것을 아시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지금도 버리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을 하느냐? 이것은 예수님의 능력을 왜 의심합니까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바로 몇 시간 전에 예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보리 떡 다섯 덩이와 생선 두 마리로 그렇게 많은 사람을 먹이고도 남은 놀라운 능력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놀라운 능력 행함을 잊어버렸습니다.  우리 가운데 곤란한 환경 가운데서 무서워하는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의 과거를 돌이켜 보세요. 그러나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건져 주셨는데 지금 당하는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주님이 나를 건져 주시지 않f습니까? 주님은 전능하십니다. 우리가 온전히 그 분을 믿기만 하면 무엇이나 우리를 위해서 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꼭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오늘 주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신령한 눈으로 풍랑 속에서도 주님을 밝히 보실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령한 귀로 '안심하라, 나다'하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담대히 사시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우리에게 닥친 모든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는 놀라운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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