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sub_ment Portland Downtown, Oregon

행복의 샘

treasure 2017.08.06 13:33 조회 수 : 113

설교날짜 1999-04-11 
본문 요14:27 
설교자 남궁진 목사 
주제  

중세기 5세기-6세기 살았던-수도원 운동의 공헌자 베네딕트 수도사가 로마에서 살 때였다. 그가 꽃피는 젊음을 맞이하였을 때 어떤 소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불같은 마음을 다해 애정을 바쳤다. 그러나 이상 한 것은 사랑하는 동안에 전에 느끼지 못했던 고통을 맛본 것이다. 왜 그럴까? 이것이 세상이 주는 기쁨의 정체였다. 즉 기쁨은 반드시 고통과 함께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 것을 사랑하는 동안에는 고통이 언제나 함께 따르고 마음에는 참 평안히 있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소녀 는 그에게 사랑을 주지 않고 그를 떠났고 그는 기쁨 없는 완전한 고통에 빠지고 말았다.

 

세상에서 행복은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무엇일까요?

화장실에 붙어 있는 구더기들의 끊임없는 도전-우리 인간들이 바로 그렇지 않는가? 를 생각함

 

사울은 길리기아 다소에서 유대인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지중해 동북부에 있는 반도임. 비옥한 평야와 따뜻한 기후 덕택에 부유한 많은 사람들이 살기를 즐기려고 모여들었음.(이곳에 유대인으로서 부유한 사울의 가정은 정통적인 유대교인의 명문가정으로 삶을 정착하고는 일찌감치 로마의 시민권을 획득함-아마도 부친대나 조부 대에서)

로마시민권의 자격은 자유인 태생의 로마 시민에게만 부여되었다. 그러나 로마의 지배권이 이탈리아와 지중해 국가들에게까지 확장됨에 따라 특정한 일부 지방민들을 포함 로마태생이 아닌 많은 사람들에게도 시민권이 부여되었음.

그의 가정은 로마의 앞잡이는 아니었음. 그렇다면 어떻게 날 때부터 얻게 되었을까? 어떤 학자들은 텐트를 만드는 가문의 일 때문에 전투 중에 있는 로마 총독에게 공헌을 했다든지, 혹은 다른 일로 공헌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울의 가문은 확실한 권력집단으로 부상을 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시민만이 같은 특권을 눌게 되었음-특별보호)

그러한 환경에서 사울은 남부럽지 않은 삶을 영위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 바리새파 사람이면서 오늘로 말하면 국회의원이었던 가말리엘이라는 이름난 학자 밑에서 정통적인 유대식 교육을 받은 엘리트 가문이었다.

그는 베냐민 지파였고, 그의 부모는 어린아이에게 사울 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는 베냐민 지파에서 나왔던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을 닮기를 소망했다. 그이 이름의 뜻은 “큰자” 이었다.

 

부와 지력을 겸비한 피끓은 젊은 청년은 기세당당 했다.

사실로 사울의 외모는 볼품이 없었다. 그렇지만 가문과 학식은 그를 교만하게 했고, 자기가 최고인 사람으로 자기를 높여 놓았다.

어느 날 그는 유대교를 정면으로 도전하는 한 무리를 만나게 된다. 예수를 믿는 집단이었다. 사울의 눈에 그것이 온전히 보일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과 대항하기로 결심을 한다. 많은 사람들을 선동하는 일에는 자신이 있는 그였다. 가문이 뒷받침을 해주고, 자신의 배움이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갑자기 담대해진 예수집단이 거리로 나와서 예수를 전하는 일이 그에게는 눈에 가시였다. 어떤 사명감마저 느낀 것이다.

그는 사람들을 선동하여 스데반이 거리에서 설교를 할 때 그들의 뒤에서 그들을 조정한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그를 그렇게 즐겁게 해 주지 않는 것이었다. 오히려 하면 할수록 그를 더욱 괴롭게 하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이었다. 기독교인들이 자기의 손에 의해서 붙잡혀 들어가는데 그의 마음은 시원치가 않은 것이었다. 왜일까요?

그는 죄의 종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자기의 의를 자랑하며 남을 향하여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동안은 우리는 죄의 종이 되어 있는 것이다. 창살 없는 감옥 속에 자기를 붙들어 매고 있는 것이다.

사단은 그에게 들어와서는, 너의 정의의 젊음을 불태워라. 잘한다. 더욱 거세게 너의 신념을 밀어 붙여라. 너는 정의로운 사자다. 불질러라. 더욱 거세게.....”라고 말이다.

비단 우리 중에도 지금 이 순간에서 행여나 내가 그래도 남보다 낳지 하면서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 속에서 평화가 사라짐을 하셔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서로 손가락질을 하고 잇는 동안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 못했어”라고 말을 함-"내 잘못이야"가정의 평안도 그렇다. 남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순간 이미 불행은 싹트고 있는 것이다.-에덴가정의 손가락질-하나님이 주신 저 여자가 주어서)

우리 중에 한사람에게라도 미움의 대상이 있다거나, 자기의의 대상이 있다면 이미 기쁨은 사라진 것이다. (성령의 열매-한 열매 속에 있는 9개의 자양분이다. - 일부분이면 벌레 먹은 열매)

 

화목한 어느 가정을 보니 모두가 죄인이더라” (의인의 가정은 불행, 죄인의 가정은 행복)

사울은 죄의 노예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그 죄에 빠져서 헤어 나올 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칠 줄 모르는 죄의 노예로, 괴로워하면서도 그것을 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또 다른 과업을 향하여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다. 때는 12시쯤 순간 하늘의 섬광을 느끼면서 같이 동행하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으로 땅에 엎드러졌고, 사울을 시력을 잃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 들렷다.

[행 26: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 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사울의 인생의 Turning Point였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핍박자가 아니었다. 아니 핍박 자라기보다는 핍박을 받는 사람으로 변모되기 시작을 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을 했다. 자기의 의를 내세우면서 다닐 때는 가시 채를 뒷발로 차는 것같이 괴로웠던 시절었는데 이제는 핍박을 받아도, 매를 맞아도, 욕을 먹어도, 감옥에 갇혀도 저 깊숙한 곳에서 샘처럼 흘러나오는 기쁨은 어인 일인가?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행 26:29]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 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이제 그는 죄의 노예가 아니라 진정한 자유인이었던 것이다.

1.아직도 우리가운데 자기의 의를 내세우고, 조금이나마, 마음속으로라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행복의 파랑새는 여러분의 것이 아직도 아닌 것입니다.

2.혹시, 여러분 가운데 늘 평안을 해치는 요소가 있습니까? - 그렇다면 아직도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의 속가락질이 늘 상대를 향하고 있지 않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 평안은 결국 무슨 평안이냐? 그리스도 안에서 와지는 평안입니다. 사울의 말년은 죄인으로서의 삶입니다. 그것이 행복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낳을 것이 없음을 인정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남을 정죄하던 발걸음이 이제는 남을 정죄하려고 하다가 자신을 정죄하는 삶으로 변했습니다. 그의 인생의 황혼기에 그는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같은 시기에 그는 기쁨의 책 “빌립보서”를 옥중에서 씁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기 시작했을 때, 그때부터 우리이마음속에 기쁨이 오기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회개의 역사는 기쁨의 시작입니다. 기독교의 시작은 회개로부터입니다.

 

이제 우리 정죄하지 맙시다.

진정한 기쁨을 얻기 위하여 편파적인 사랑도 벗어납시다.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불신자들의 전유물입니다.

우리모두 사랑하므로 그리스도의 평강의 소유자가 됩시다.

번호 제목 본문 설교날짜 설교자 주제 조회 수
79 음성설교 파일을 설교내용과 함께 올리는 방법 test  2018-03-21  test  test  325
78 천국의 대헌장-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은 자의 복-천국 마5:10-12  2018-01-14  남궁진 목사  산상수훈-팔복  328
77 천국의 대헌장-화평케 하는 자의 복, 하나님의 아들이라(7) 마5:9  2018-01-07  남궁진 목사  산상수훈-팔복  349
76 하나님의 한 의(2) 롬3:21-22  2017-12-10  남궁진 목사  대강절  304
75 하나님의 한 의(1) 롬3:21-22  2017-12-03  남궁진 목사  대강절  342
74 감사절-감사중의 감사 롬3:21-25  2017-11-19  남궁진 목사  감사절  326
73 천국의 대헌장-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하나님을 봄(6) 마5:8  2017-11-12  남궁진 목사  산상수훈-팔복  328
72 천국의 대헌장-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긍휼(5) 마5:7  2017-11-05  남궁진 목사  산상수훈-팔복  322
71 천국의 대헌장-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천국, 배부름(4) 마5:6  2017-10-29  남궁진 목사  산상수훈-팔복  317
70 천국의 대헌장(팔복)-온유한 자의 복, 땅(3) 마5:5  2017-10-22  남궁진 목사  산상수훈-팔복  351
69 천국의 대헌장(팔복)-애통 하는 자의 복, 위로(2) 마5:4  2017-10-15  남궁진 목사  산상수훈-팔복  326
68 천국의 대헌장(팔복)-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천국(1) 마5:1-3  2017-10-08  남궁진 목사  산상수훈-팔복  330
67 하나님의 전신갑주-모든 기도와 간구(7) 엡6:10-20  2017-10-01  남궁진 목사  영적무장  328
66 하나님의 전신갑주-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6) 엡6:17  2017-09-24  남궁진 목사  영적무장  400
65 하나님의 전신갑주-구원의 투구이신 예수 그리스도(5) 엡6:10-17  2017-09-17  남궁진 목사  영적무장  422
64 하나님의 전신갑주-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이신 예수 그리스도(4) 엡6:16  2017-09-10  남궁진 목사  영적무장  392
63 하나님의 전신갑주-평안의 복음의 신이신 예수 그리스도(3) 엡6:15  2017-09-03  남궁진 목사  영적무장  602
62 하나님의 전신갑주-의의 호심경이신 예수 그리스도(2) 엡6:14  2017-08-27  남궁진 목사  영적무장  430
61 하나님의 전신갑주-진리의 허리띠이신 예수 그리스도(1) 엡6:14-18  2017-08-20  남궁진 목사  영적무장  363
60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6) 엡6:10-13  2017-08-13  남궁진 목사  영적무장  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