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sub_ment Portland Downtown, Oregon
설교날짜 2017-09-03 
본문 엡6:15 
설교자 남궁진 목사 
주제 영적무장 

지난 2주간 하나님의 전신갑주 본론에서, (1) 진리의 허리띠, 힘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 (2) 의의 호심경, 하나님의 십자가의 의(롬1:17)이시고, 의의 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은 ‘신(Feet)’, 발에 관하여 말씀 드립니다.

 

여러 종류의 신이 있고, 신은 상황에 맞는 신이 있습니다.

허리케인 Harvey가 강타한 텍사스에 영부인이 하이힐을 신고 나섰다가 여론의 매를 맞았습니다.

신은 무엇을 하는가? 를 따라서 다르게 신게 됩니다.

 

하나님은 미래의 지도자를 만들기 위해서, 모세를 3단계로 훈련시키셨습니다.

1.어린시절 – 애굽의 왕실에서-세상의 학문과 기술, 무예 등

2.청년시절 –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고독 가운데서,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움.

3.장년시절 –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민족의 지도자로 새우심.

 

둘째 단계가 끝날 무렵…하나님께서는 호렙산 불꽃으로부터 모세를 부르십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 있는데…불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불꽃을 일으켜서 모세를 불러 들이십니다.

모세는 광야 떨기나무에 붙은 이상한 불길을 향해서, 가까이 다가 갑니다.

그 불길은 하나님이 임재 하셨다는 표시였고, 하나님은 그 지점을 구별시키셨습니다.

그 광경,  보잘 것 없는 가시덤불에 피어 오른 불은, 불쌍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열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곳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출3: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이 구별시켜 놓은 그곳에서, 80년간 신고 다닌, 세상의 신을 벗으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실제로 신을 벗으라는 주문이시기도 하겠지만, 사실은…옷깃을 고쳐 세우고…하나님의 다자인을 향하여, 진지한 모습으로 신을 벗고 다가오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세속적인 신을 던져 버리고, 하나님 앞에 서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잠시 후에, 모세에게 ‘큰 사명’을 주시려고 부르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어서, 3장 후반부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신발은 벗었는지 모르지만, 애굽을 도망쳐 올 때의 아픈 기억의 신, 초라한 자신의 몰골의 신은 벗지 못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토를 달고,…다섯 번 씩 거절을 하면서, 그 아픔들을 떨쳐 버리지 못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고 다니는, 신이 아주 중요한 용도들이 있습니다.

발걸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내가 늘 다니던…그 발걸음이 내 인생이 되어 있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 신의 용도대로 우리는 살아 갑니다.

 

마음을 바꾸었는데도, 말을 타고, 늘 다니던 그 유흥가를 향해서, 가는 말의 목을 쳐 버렸다는 김유신의 예화도 있습니다.

 

민족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벗어 버려야 할 신을 모세는 신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신을 벗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도자가 되기 위하여, 신을 벗어야 하지만, 또 다른 신을 신어야 합니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가졌다고 기록합니다.)

출4:20.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물론, 지팡이를 짚고, 가는 신발이…같은 신발일지 모르지만, 새로운 마음 가짐의 신발을 신어야 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러한 신의 중요성을 봅니다.

엡6: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that comes from the gospel of peace)

comes from…현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그 무엇인데?…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the gospel of peace” (평안의 복음). ‘평안이라는 복음’….으로 신을 신으라…는 말입니다.

복음 전도하라는 말로 들리신다면, 그것은 너무 나간 말씀입니다.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는 일이 먼저 입니다.

전도를 떠오르게 하는 상황으로 진행이 된다면, 이곳은 그 이전에 꼭 갖추어야 하는 단계라고 하겠습니다. (Doing하기 전에, 어떻게 Being해야 하는가? 의 문제라는 말)

 

전도를 열심히 하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전도는 갑주를 입고 나가는 그 다음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는 해야 마땅한 것인데, 그 전도는 ‘평안의 복음’이라는 지점으로부터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 ‘평안의 복음’의 본질은 무엇인가?

사도바울이 신약성경의 13권의 편지를 영감으로 기록했는데…그 서신의 서두에 하나같이 빠지지 않고 하는 문안인사가 있습니다.

그 문구가 바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입니다.

이 사실을 바울은 철저히 체험한 사람이었습니다.

 

(1)은혜 – 대가가 아닌, 베풀어 주시는 무한한 사랑을 말합니다. 그 사랑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이미 주어진, 그 사랑에 사랑을 더 축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2)평강 – 물질적, 정신적인 모든 것을 총망라해서, 그 넘어 존재하는 절대적 평온함을 말합니디.

이것은 물질의 풍부함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물질적 빈곤도 넘어설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평강만 있어 준다면, 그 평강은 모든 것 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이 채워짐으로 오는 ‘조건 만족적인 것’도 아니고’ 삼위의 하나님때문에 오는 평강 입니다.

조건을 따진다면, 그 분들이 오직 조건입니다.

그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 그 분들로부터 오는 순수한 평강을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자체가 지니고 있는 평온함, 평강임)

그래서, 본문에서 말씀하는 “평안의 복음”은 바로, 복음 자체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로부터 흐르는 평강)

 

그것은 무엇을 하므로(Doing) 평안이 오는 것이 아니라, 평안 그 자체가 우선해야 하는 것인데(Being)…그 신을 신으면…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평안”이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짚어보자면, 바울이 교리서신 로마서를 쓰면서, 서두에서 복음이 무엇인가? 를 정의 합니다.

 

롬1:2-4.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중간은 과정은 모두 수식어이고, 굵은체 연결해서, 복음은 예수님이라고 선포하는 내용입니다.

모두 연결시켜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평안이라는 신을 신고 다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전도하라는 행동지침 이전의 원 가치를 말합니다.

전도는 그 평안을 전하는 일이고, 그 이전에,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평강의 신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택함 받은 우리들의 사명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두 내용의 합성어 = 1.하나님의 택하심 + 2.전도)

 

먼저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택해서, 왕적 권세를 가진 세상을 향한 제사장으로, 구별해 주신, 사명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이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는, 그 분을 선전하기 위해, 전도하기 위해 우리를 부르심-

선전책은 맞지만, 세상으로 가기 위하여, 마치 동서남북으로 전신갑주를 두른 것 같은 무장이 먼저이고, 그 분이 하셨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면, 마귀를 대적하기 위하여, 출전하기 전에 갖추어야 할 일은, 걸음을 걷는 행위적(Doing)인 어떠한 것이 아니라, 신을 신는 것처럼, 상태적(Being)인 일에 더 가깝습니다.

그 복음이라는 것을, 아예 신으로 신고 있으라는 말입니다.

그럴 때, 전도는 나오게 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평안의 복음’의 충만한 그 상태가 무장하는 것이고, 그것이 사탄을 이기게 된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다’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평안이라는 신을 신고, 평안이 충만한 전천후의 상태가 바로, 전도자의 자질이기도 하고, 전도는 그러한 상태일 때, 하게 됩니다.)

 

창세기에서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사람이 에녹입니다.

창세기 족보를 보면, 대체적으로 “자녀를 낳고, 몇 세를 살다가 죽었다” 라고 기록을 합니다.

그런데, 유독 에녹만은 창5:21-24.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walked with God)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walked with God)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했습니다.

에녹은 자녀를 낳았지만, 그는 다른 조상에게는 붙어 있지 않는 인생살이의 수식어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6장9절에서, 노아에도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기록하고, 8절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은, - 신발 신고, 발로 하나님과 함께 다녔다는 말입니다.

붙어 다녔다는 말입니다.

지상에 있지만, 하늘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걸을 때, 신을 신고 있는 것처럼…늘 그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 표현을 “walk with God” 했다고 기록 합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걸어 다녔다는 표현을 넘어서, 늘 다닐 때, 그 분의 껌딱지였다는 말입니다.

늘 하나님과 산으로 들로 다녔을까요? –안에 늘 그 분이 계심-

마치 어린 아기에게 어머니가 늘 살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정황상으로 오늘의 말씀도 동일한 말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전제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했을 때는 출전하는 모습이 아니라, 출전하기 위한 무장이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갑옷으로 무엇을 갖출까? 그러한 문제인 것입니다.

 

지난 두 주를 통해서, (1)힘의 원천, 진리의 허리띠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무장, (2)하나님의 의인 십자가의 용서의 의로움을 허락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무장을 할 것을 말씀 드렸는데…오늘도 같은 맥락으로, 우리의 몸을 둘러 싸는 그 무엇이어야 타당하지 않을까요?

바로, 평강의 신을 신고 있는 것입니다.-떨어지지 않음

말씀 자체에 있는 대로, “평안의 복음으로 신을 신고” – 신은 상태를 말합니다. (나가는 것은 둘째입니다.)

복음은 평안입니다. 복음이 그리스도시라면 그리스도가 평안입니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 아니면, 어디에도 평안이 없습니다.

 

부활한 예수님은 등장하실 때마다, 늘 “평강하라” 하셨습니다.

바로,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려면, 복음이신 주 예수님을 신는 것입니다.

항상, 신을 신고 다니듯이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것이 무장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평강이 있으면, 사탄에게 절대로 흔들거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제대로, 복음을 전할 수도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거기서 나와야 합니다.

생수가 흘러 나오듯이, 평안의 복음에서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이 바로, ‘평안’ 인데, 그것이 복음의  ‘본질적인 가치’입니다.

내속은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데…어떻게 고요함이 나오고, 잔잔함이 나올 수 있습니까?

그래서, 평안이라는 내적 본질이 핵심가치 입니다.

 

바로, 또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 드렸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니까요.

 

늘 평강이 들어 있는, 예수님을 신발로 신고, 완전히 끈으로 붙들어 매고, 다니면서, 그리스도를 외치고, 되 뇌이고, 예수 이름으로 명하고, 꾸짖고, 선포하면서…그 평강으로, 폭풍처럼 다가오는 사탄을 아주 낮은 톤으로 점잖게 꾸짖고(조용하게, 잠재우고)…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할까요?

예수님으로 신을 신습니다.

에녹처럼, 노아처럼 주님과 동행하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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