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sub_ment Portland Downtown, Oregon
설교날짜 2017-10-15 
본문 마5:4 
설교자 남궁진 목사 
주제 산상수훈-팔복 

예수님의 죽엄 앞에서, 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어떤 제자들도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 앞에 있었겠지만, 몇몇의 여인들이 적극적으로 주님의 죽엄 가까이에서, 슬퍼 했습니다.

특히, 주님의 은총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 한 사람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 곁에 늘 있었습니다.

우리가 감격할 때, 그 때, 우리는 울게 됩니다.

분노할 때, 억울할 때, 울 것 같은데, 이상하게 그 때는 대체로 이를 악 물고, 울지 않습니다.

물론 울 때로 있습니다만, 길게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면, 울면서, 멀어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울면서, 배신하는 사람도 흔치 않습니다.

울음이라는 말은 바로 그러한 의미가 있습니다.

배신자들은 웃지, 울지를 않습니다.

Passion of Christ 영화에서도 보면, 사단은 비웃습니다.

울음이라는 의미는 바로 그러한 의미입니다.

울음은 돌아옴의 의미입니다.

울음은 회개의 의미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울음이라는 말은, 나의 삶의 변화와 돌이킴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순간을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정말로 하나님 앞에서, 우신 적이 있습니까? –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여러분, 찬송을 부르시면서, 말씀 들으시면서, 그 내용이 마음을 두드리는 것 때문에, 우신 적이 있습니까? –그것임-

지금 그 예배 안에서의 하나님의 임재의 감격 때문에 때문에, 가슴이 울렁거리고, 감격이 솟구치는 경험이 일어나고 있으십니까?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면, 어쩌면 우리 형식으로, 찬송하고, 예배하고 있는지 봐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법률적인 형식으로 하나님을 향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형식적인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꾸짖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보다도 열심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준수라면, 둘째가라면 그야말로 울어 버릴 사람들이었습니다.

형식적으로 그들은 그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율법의 준수를 기피한다고, 고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돌로 치려고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그들은 정말로 존중 받아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형식을 아주 심각하게 꾸짖으셨습니다.

형식은 책망 받아야 마땅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형식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기준이 아닙니다.

마 15:8-9.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입술로만, 경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사람들이, 상대방의 마음을 읽지 못해서, 입에 발린 말에 속아 넘어가는 것이지, 우리들의 마음을 모두 읽어 내시는 하나님께서, 입에서만 드리는 그 예배를 받으시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중심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시고, 마음에 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울왕 후임으로, 다윗을 왕으로 미리 기름부으시려고, 선지자 사무엘을 베들레헴의 이새의 집으로 보냈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8명중 막내-아버지도 부르지 기대無)

사무엘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그 사실을, 신약성경에 기록합니다.

행 13:22.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삼상13:14)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왜요? 중심이 통함

우리가 중심으로 하나님께로 가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드리는 모든 것들의 가치가 손상.

그래서,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의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영의 예배이면서…진실된 예배…요4:24. …worship in spirit and in truth”

그래서,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보내신 그 은혜, 십자가에 달리신, 그 예수님이 가슴에 닿지 않는다면, 어쩌면, 우리는 바리새인 입니다.

여러분이 제가 말씀 드리는 요소가, 너무 감상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것이 가슴에 와 닿으면, 감격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 눈물로가 아니면, 설 수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에서 살리신 은총을 누렸기 때문입니다.

죽음 앞에서, 그 분이 그의 방패가 되었다는 그 사실이, 그의 가슴을 늘 울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께서 죽으셨다는 그 사실은, 그녀에게 큰 눈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을 향해서, 창검이 두렵지 않습니다.

군병들이 그의 앞을 막아도, 무덤까지 안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눈물입니다.

그래서, 사라진 예수님의 시체를 걱정하면서, 무덤 밖에서, 울고 있는 것입니다.

요 20: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물론, 이 울음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 울음은 아닙니다. (예수님께 받은 은혜의 눈물임)

그러한 눈물로, 제일 먼저 안 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제일 먼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주님을 향한 눈물이, 가져다 준, 크나큰 위로였습니다.

아직도, 추종자를 색출하려는, 로마 앞잡이들의 위협이 놓여 있는 그 사실이, 감격의 눈물이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장애물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무덤 앞에서, 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예배의 감격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어쩌면, 우리들의 예배는 무의미한 허공일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서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그 피와 십자가 때문에, 여러분 감격하십니까? (이것이 본질입니다. – 삶 이전의 마음문제) – 설교에 감동으로 우는 것 (secondary)

 

김응국 목사님의 ‘십자가’라는 책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 한강에서, 고등학생이 물에 떠내려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청년이 그 학생을 죽기 살기로 살려 냈습니다.

그렇게 살려 냈지만, 정작 자신은 너무 지쳐서, 그만 그 물에 휩쓸려 죽고 말았습니다.

살림은 받은 학생은, 책가방을 짊어지고, 유유히 사라졌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그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정작 그러한 사람들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죽어주신 그 분 앞에서, 늘 유유히 감격없이 지나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회개는 감동의 눈물이 동반이 되어야 합니다.

눈물이 동반되지 않는 회개는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고도, 말씀을 듣고도, 전혀 감동과 변화가 없는 우리들의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러한, 나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투쟁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형식적인 깨달음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눈물이 없이는, 우리의 신앙의 기초가 회복이 되지 않습니다.

눈물로 회복된 신앙만이 진정한, 반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남을 향해서, 손가락을 내밀지 않습니다.

바리새인은 기도하면서, 세리와 자신이 구별됨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애통하고, 자복했기에, 오로지 자신의 잘못된 모습을 향하여서, 집중했습니다.

구원 받을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세리를 닮은 사람들입니다.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은 없고, 모두가 상대방의 잘못입니다. (온통 한치의 미안한 감도 없이, 상대방을 몰아 세웁니다.)

그래서, 그들에게서 눈물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천국의 시민들의 복 두번째, 애통하는 사람의 복입니다.

마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be comforted) 것임이요

천국에서의 위로는, 웃는 자가 차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지상에서는, 웃는 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어떻게든지 웃는 자는 승리자입니다.

(Motion) 승리의 손을 드는 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함께 웃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권모와 술수를 써서라도 승리하면, 승리의 웃음의 축배를 함께 듭니다.

그래서, 지금 종교계이든, 정치계이든 ‘꿩잡는 것이 매’이다. 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사용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 모아, 교회는 크게 만들고, 정치에서는, 승리를 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에 면죄부를 주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천국의 법칙이 아닙니다.

천국에서는 애통했던 사람들이 주의 위로를 받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애통했을까요? 

세상에서 남에게, 빼앗긴 재물에 대한 원통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억울한 일 당한 것에 대한,이를 가는 애통도 아닙니다.

자신의 죄를 위해서, 우는 것을 말합니다. (또는, 내 죄가 너무 큰 데…그 죄를 담당하신 주님이 너무 크게 보이고, 감격스러워서 웁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잘 못 살고 있는 자신을 위해서, 웁니다.

 

또한, 복음의 씨를 뿌리면서, 우는 것을 말합니다.

시 126:5-6.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songs of joy)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songs of joy)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요한 계시록에서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신 후에,

계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지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울었던 사람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위로입니다.(주님 위해서 우는 것은 복임)

그래서, 주를 향한 감격이 있지 않으면, 어쩌면 우리들은 말라버린 저수지와 같지 않은 지 모릅니다.

울어야 말랐던 저수지가 채워집니다.

울지 않으므로 감격이 없습니다.

사실이 아닌, 영화를 한 편 보면서도, 감격하면 울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드라마를 보면서, 자주 감격을 합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면서, 십자가에서 주신, 감격이 사라진 나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을 향한 어떠한 생각을 하시는지 물어 보아야 할 시간입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위로는 ‘우는 자’에게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람들을 향해서,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지, 함께 물어 봅시다.

잃어버렸다면, 아니…눈물이 없었다면, 무엇이 원인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 애통이, 풍성함 줌)

 

이사야 선지서에서, 사 61: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a crown of beauty) 을 주어 그 재(ashes)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the oil of gladness) 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a garment of praise)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oaks of righteousness)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a planting of the LORD for the display of his splendor) 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1-2을 보면, 예수님의 성육신 하심으로 일어날 일들이 전제가 되어 있습니다.

그 예수님이 갈릴리 말씀에서...눅4:17-20,-사61:1-2 인용하심…자신에 대한 예언을 상기키시는 메쎄지였음)

 

그 결과가 3절임…(1) 슬퍼했던 자들에게, 아름다움의 왕관을 주셔서 화를 대신해 주시고,

(2) 기쁨의 기름을 부어 주시면서, 슬픔을 대신 주시고,

(3) 찬양의 옷으로, 근심을 대신해 주시고, ,

(4) 의로운 나무를 삼으시는데, 그 말은 ‘하나님의 영광스런 광채를 나타내기 위해서, 삼으신 의로운 나무’ 라는 칭호를 얻었다는 말입니다. (감격스러움)

이것이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의 두 번째의 축복, 애통의 복 입니다.

걱정 마시고, 주님보고, 우시고, 그 한 분으로 만족 하세요…살아도, 죽어도 주님이 책임지실 것입니다. –아멘???-

 

우리 함께 기도할까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주신 모든 은혜 감사 합니다.

더욱 더 큰 은혜를 느끼면서, 주님이 나의 애통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감격하므로 울게 하여 주세요.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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