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sub_ment Portland Downtown, Oregon
설교날짜 2017-10-22 
본문 마5:5 
설교자 남궁진 목사 
주제 산상수훈-팔복 

산상수훈은 두 세계를 사는 사람들의 가치의 책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히브리적 생각 안에서, 지상이라는 세계를 꿈꾸면서, 주님을 추종하려 했던 사람들입니다. (구약에 개념은 있지만, 천국이 등장 안함) (그들을 일깨워 주시면서…오늘 우리들을 향하여…어떻게 살 것을 말합니다.–천국은 예수님 전용어-천국 갖고 오심)

보면 이 산상수훈은 천국시민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1)그렇게 살면 천국시민이 된다는 말이 아니라, 천국시민의 가치는 이렇게 매겨진다는 말이고, 천국시민은 이렇게 살아야 하고, 또 정말로 천국의 시민이라면…이러한 상태가 된다는 말입니다.

(2)늘 말씀드리 듯이 성경은 그렇게 살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거듭나야 천국시민이 됩니다.–이것이 세상 종교와 다른점-罪解決)

(3)그래서, 성경은 도덕과 윤리의 지침이 아니라, 용서와 거듭남의 책이고, 그래서, 그렇게 거듭날 것을 촉구하는 책입니다. (촉구한다기보다는 우리를 그렇게 거듭나게 하시려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오셨다는 기쁜 소식의 책, 감격의 책입니다.)

(4)산상수훈을 보면…구약의 율법을 재해석 할 정도로 도덕과 윤리가 많이 등장하는데…바로 그렇게 “천국의 시민들이 이렇게 사는 것이다” 는 책이라는 말입니다.

(5)아니…율법보다 더 심각한 윤리입니다. (5장 중반에…외형이 아니라, 마음의 책임 = 구약의 살인자 심판이 노하기만 해도 심판이 되고, 음욕이 간음이 되는 것으로 마음의 교훈을 말씀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율법으로 우리는 구원 받을 수 없다. (십자가의 용서가 필요하고…은혜가 필요한 사람이다 를 심각하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복의 세번째 계단인 온유한 자의 복입니다.

그런데, 그 복은 “땅이 기업이 되는 복”입니다.

말이 안 되는 역설이죠? – 트럼프 대통령이 부동산 업자인데…그 방법이 먼저 기선을 제압하고, 거래하는 것이랍니다.(이겨야 하니까요…

 

그런데, 온유해야 땅차지 한데요.

왜일까요? –우리들의 땅은 세상사람과 같지 않기때문입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하늘나라 입니다.(다른 세계)

하늘나라는 늘 우리 가슴에 새겨야 할 곳입니다.(마치 고향을 떠나 객지에 사는 자녀가 설 되면 고향에 달려갔음…지금도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경험 – 한국)

여러분, 우리가 가야 할 곳, 고향이 있습니다. (그 땅)

좋은 집짓고 80년, 90년 살지만, 언젠가는 죽을 것이고, 예수님 재림하시면, 단번에 가야 하기에 우리는 이래 저래, 말세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하늘나라는 이 세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육체가 부활해서, 육신과 영혼이 가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상의 삶의 연장이다.)

천국이 이렇게 중요하기에,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공생애를 사시는 그 천번째 말씀은 (마 4:17) 이 때부터(From that time: 아포토테)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하시더라 였습니다.

뭐? 떠오르는 말씀 없습니까? – 마16:23절, 이때로부터 십자가 말씀 하심 = 천국과 연관되어 있는 십자가임.

마16:21. 이 때로부터(From that time: 아포토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여기에 ‘이때부터’라고 했는데, 이 때는 광야의 외침이었던, 세례 요한이 잡힘을 듣고, 또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40일 금식기도를 하신 후였습니다.

그야말로, 사역을 시작하실 준비가 끝난 후, 바로 이러한 뜻입니다. (1차 사역의 시작에도…2차 중요한 임무 시작에서도…뜸을 들이다가…)

 

이것은 그 분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의 가장 으뜸이 바로 ‘천국’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전개되는 모든 말씀전파, 가르침, 병고침등의 종합주제가 바로 이 ‘천국’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주님이 계신 천국을 볼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인가? 잘 못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수 차례 신앙의 선조들은 이 지상을 보고 산 것이 아니라,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 갔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우리가 아무리 지상에서, 노력하고 얻었다해도, 우리가 가지는 소망이 하늘이 없으면, 우리는 진정한 기쁨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망은 채워짐보다 항상 앞서 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상의 뭍혀 있기에, 헤어 나올 수가 없습니다.

 

마치 탁한 물 속에 있는, 물고기가 그 속에 있으면서, 그 물만을 생각하는 동안에는, 그 물을 헤쳐 나올 방법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욕망을 넘어설 수 있는 제도나 장치가 적어도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 지상의 한계를 넘어서, 저 세계에 대한, 소망이 내 인에 심어질 때, 우리는 이 지상의 욕망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그 곳을 천국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예수님의 말씀의 주제요, 성경의 주제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복이니까, 복부터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 그들이 복이라는 개념을 잘 못 알고 있으므로, 진정한 축복은 마음의 복이라고, 교정을 해 주십니다.

마음의 평강이 사라지면, 지상의 어떠한 것이 채워져도 지옥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행복은 내적인 것이지,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쾌감은 무엇을 했을 때, 혹은 무엇이 채워졌을 때, 오게 되지만, 행복은 어떠한 상태에서 옵니다.

쾌감은 마음을 빼앗기면서, 오는 것인데, 진정한 행복은 마음을 되 찾았을 때,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쾌감은 동적인 것이 많은 데, 행복은 정적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쾌감은 때대로 마음을 잊어 버리는 데, 행복은 내 안으로 차분하게 들어 앉게 됩니다.

그래서, 쾌감은 자꾸 채워져야 계속 느끼는데, 행복은 계속 솟아나는 그 무엇, 생물 같은 것입니다.

쾌감은 때때로, 조용함 속에서도, 나를 우울하게 만들 수 있지만, 행복은 오히려, 조용한 곳에서 나를 웃게 만듭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늘 군중과 한 바탕 지낸 후에, 어디를 찾으십니까?

내적 평강의 장소였습니다.(바로, 예수님이 가신 그곳입니다.)

막 1:35.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예수님의 샘물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쾌락을 행복이라고, 착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허감에 빠진 사람들은, 그 공허를 메꾸려고, 수단을 가리지 않고, 무엇인가? 를 채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허전하니까, 무엇을 채우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진정한 행복은 어떠한 상태이어야 합니다. (존재, Being하려하지 않고, 열심히 doing하려고 함.)

그래서, 진정한 평화는 활동이 아니라, 조용한 상태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 누구와? 사랑하는 그 분과.)

 

예로, 어떤 분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열심히 먹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살이 붙는 것을 스트레스성 살이다라고 합니다.

스트레스가 살을 찌게 하는 것이 아니라, 먹으니까 찌지요.

어떤 분들은 스트레스 해소하려고, 샤핑을 한다고 합니다.

행복을 되찾기 위해서, 외부적으로 무엇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진정한 행복의 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떤 분들은, 여행을 떠납니다.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떱니다. (또 있나요?)

그것은 일시적인 쾌락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닙니다.

부족했던 물질도 해결 되면, 잠시는 해방일지 모르지만, 행복은 가져다 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생수는 솟아나오는 것이지, 외부에서, 주입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행복은, 내적 확신에서, 비롯된 내적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내적 행복은 역설로, 외부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외부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한 행복은 조건적인 행복이 아니길래, 세상적인 부귀영화, 또는 환란풍파에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산상수훈의 천국시민의 행복의 메쎄지 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애굽을 향하여 내리신 10가지 재앙으로, 얼마나 마음이 뿌듯했을까요?

애굽의 장자가 죽던 날 밤, 이스라엘 나라는 대 축제를 벌였습니다.

그들은, 허리띠를 띠고, 신발을 질끈 신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애굽을 떠났습니다.

그들이 그 때, 느꼈던, 그 기쁨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나님의 인도로, 홍해 앞에, 갇혀 버리고, 뒤에서는 당대의 최고의 군대인 애굽의 말과 병거가 따라 오기 시작하자, 그들은 자신들을 인도했던, 그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에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애굽에서 행하신 10가지 기적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기를 원했고, 홍해수 앞에서도, 그 홍해와 쫓아오는 병거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기를 원하셨는데, 불행하게도 그들은 거기에서부터, 광야 내내, 사건만을 보기 시작을 했습니다. (본질을 보지 못하고, 비본질, 조건만 봄)

그래서, 그 사건이 불행하면, 불평을 하고, 그 사건이 쾌락이면 기뻐하는 일을 계속 반복했습니다. (행복無)

그런데, 여러분 모세를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모세가 호렙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양치기 지팡이를 들고, 남루한 옷을 입고,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지도자로 삼겠다고 할 때, 다섯번이나 고사를 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샀지만, 결국, 그 하나님을 받아 들인 후에, 같은 지팡이를 들고 가는 그는 이제, 출 4:20. 모세가 그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께 고정함)

무슨 말입니까?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이후로 모세는 하나님 때문에, 늘 당당한 사람으로 사람 앞에 서게 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여, 미디안 광야로 피신했던 그 모세가 아닙니다.

홍해수 앞에서, 백만명 이상이 원망하는 그 틈에서, 모세는 당당하게 이렇게 외침을 볼 수 있습니다.

출 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Do not be afraid. Stand firm)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출 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you need only to be still- 평온함)

다시 말씀 드리면, 절대 동요하지 말고, 잠잠히 믿고 기다리라는 말입니다. (이유? –하나님이 싸우심)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기적의 사건을 보기 위해서, 느긋하게 지켜 보라는 말입니다.

내적 행복은, 그야말로, 하나님 자신으로 인한 전천후의 고요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상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평화는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 생활 동안, 하나님의 외부적인 채우심을 받았지만,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와지는 통한 내적 평강이 그들에게 없었으므로, 결국 광야에서,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 가운데, 마음에 하나님으로 통한 내적 확신과 평강이 지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 어쩌면, 그 순간 광야의 이스라엘 민족처럼, 하나님을 불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불신한다면, 우리는 그 순간 그 무엇인가? 다른 것을 의지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우상)

산상수훈은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향하여, 이러한 복의 정의를 강력하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은 외적인 복이 아니라, 마음의 복을 말하고 있고, 더 나아가서, 그 진정한 행복은 ‘하늘과 연결이 되어 있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상수훈 마태복음 5-7장을 ‘천국의 대헌장’이라고 이름이 붙었습니다.

 

오늘 팔복에서도, 보면, 그 시작이 천국입니다.

10절에, 팔복의 마지막 복도 천국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 하늘나라는 그 나라를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그 밭을 사는 심정으로 귀중히 여기는 자에게 귀중한 곳이 될 것이고, 그 밭을 소유하게 됨.

밭을 일구다가, 보화를 발견했다고 하는데도, 자기의 소유를 팔아서, 그것을 살 마음이 없는 사람은 값진 천국을 소유할 자격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값진 천국을 소유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세번째의 복이 온유한자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 팔복은 음반의 음이 연결되어 아름다움이듯이..연결됨)

세상의 욕망을 가진 사람들은 절대로 온유할 수 없습니다.

욕망은 온유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욕망은 이기심과 가까운 것입니다.

욕망은 남을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자신을 생각하고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상대방은 희생되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자세입니다.

 

오늘의 세상은, 온유한 자가 살아 남을 수 있는 세상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하시는 이 온유는 이 세상의 논리와는 정반대입니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가서, 그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한다’는 말은 더 말도 안되는 말입니다.

땅을 차지한다는 말은 ‘소유권’인데,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지상에서는 어떠한 일들을 해야 하는 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온유는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근처도 가지 못하는 그러한 마음의 소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이 이 땅에서 지분을 갖는다는 말은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만약, 그들이 가질 수 있다면, 반드시 힘센 누가 줘야 함)

적어도, 현 세대에 이 말은 이 세상을 향한 진리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이 지상의 용어가 아니라, 천국의 용어입니다.

천국의 특징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에도 소유개념이 있는 것일까?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영구차에는 짐칸이 없다”, - 빈손으로 간다는 말

천국에, 이 지사의 재물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천국에 보물을 쌓아 두라고 하셨습니다.

마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마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천국에서도 소유권이 있음을 말하는 대목입니다.

천국에서도 나의 지경이 있다는 말 아닙니까?

지상에서는 소유권이 있으면, 소유권 전쟁이 늘 있지만, 천국은 사랑이 지배하는 곳이기에 그러한 소유경쟁은 없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소유권은 있지만, 전쟁은 없는 그러한 소유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요?

천국에서는 시공을 초월하는 세계이니, 초월한 세상을  누리는 정도의 차이라고 봅니다.

딤전 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이 말씀은 이생의 훈련의 효과를, 천국에서 잊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훈련결과가 천국에서도 유지된다는 말입니다.

실례를 들면, 우리는 Web site을 가상의 공간(Syber World) 이라고 부릅니다.

일단, 웹주소 하나를 가지면, 마음껏 그 인터넷 세계를 어디든지 점령할 수 있습니다. (facebook, google, amazon,…모두 그런 세계입니다.)

마음 껏, 웹의 공간을 활용하지만, 누가 내 땅 차지했다고 하는 사람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하늘의 성품으로 갗추어진, 그 사람들은 거기에 더해진, 축복된 아름다움으로, 그 세계를 지금도 누리고 있습니다. (그 모습으로 천국감)

경건훈련으로 준비된 차이만큼 더 우리는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지금 여기서, 주님 안에 더 깊이 갈수록, 우리는 주님의 천국을 누리는 정도가 차이가 있습니다. = 이해가 조금 더 되시나요?)

 

누가 그렇게 하늘의 지경을 넓히고, 땅을 차지하게 되는가?

온유한 사람입니다. – 어떻게 온유할 수 있는가? (이 세상의 욕심 없는 사람이 싸우고 싶지 않아요-價値觀)

-어릴때나 구슬치기, 딲치치기 보물로 싸웠지..이제NO

‘온유한 자’, 하늘을 생각하는 믿음이 있기에, 지상에서 싸움을 벌이지 않고, 잠잠히, 부드러운 마음씨를 늘 간직하고, 잠잠히 하늘의 위로를 기다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빼앗긴 들에 봄이 오게 하셔서, 그들에게 하늘의 지경을 넓혀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니, 지금 넓혀 주시고 계심을 우리가 스스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 세계가 영원으로 펼쳐 주실 주실 줄 믿습니다.) – 아멘???

 

우리 함께 기도할까요?

우리들의 가치관이 하늘을 향하게 해 주세요.

세상에 요동치지 않고, 온유한 마음으로, 주님의 땅을 소유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 주세요. 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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