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sub_ment Portland Downtown, Oregon

감사절-감사중의 감사

treasure 2017.11.26 15:39 조회 수 : 42

설교날짜 2017-11-19 
본문 롬3:21-25 
설교자 남궁진 목사 
주제 감사절 

추수감사절만 되면 더욱 감사에 대한 언급이 많아지게 되죠? 왜 그런가? 보니 대부분 지상의 삶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삶의 방편…인도, 보호, 공급 등등)

그러나, 감사 중의 감사의 핵심은 ‘구원’ 입니다. 태양의 중심에서 빛과 열이 분출되듯 감사의 분출은 여기에서 비롯 됨을 전제로 말씀을 시작합니다.

 

3미터 키의 거장, 골리앗 앞에서 이스라엘 군이 걱정했습니다.

"저렇게 거대한 자를 어떻게 죽일 수 있을까?'

하지만 다윗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저렇게 크니 절대 빗맞을 일은 없겠군, 오히려 큰 것이 감사하구만."

마음의 문제입니다. (산상수훈의 팔복 교훈도, 요4:23의 예배자의 태도도 마음의 문제임)

 

한 백발의 노인이 이제 중년이 된 아들과 거실에 마주 앉아 있었습니다.

그 때 우연히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의 나무에 날아와 앉았습니다.

노인이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저게 뭐냐?"

아들은 다정하게 말했습니다. "까마귀요. 아버지"

아버지는 조금 후 다시 물었습니다. "저게 뭐냐?"

아들은 짜증이 났습니다. "글쎄 까마귀라고요."

아들의 음성엔 아버지가 느낄 만큼 분명하게 짜증이 섞여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 아버지는 다시 물었습니다.

네 번째였습니다. "저게 뭐냐?"

아들은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까마귀, 까마귀라고요. 이해가 안돼요? 왜 자꾸만 같은 질문을 반복하세요?”

 

조금 뒤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 때가 묻고 찢어진 일기장 하나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 일기장을 펴더니 아들에게 주며 읽어보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일기장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엔 자기가 세 살짜리 아기였을 때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은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에 날아와 앉았다.

어린 아들은 "저게 뭐야? 하고 물었다.

나는 까마귀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아들은 연거푸 스물세 번을 똑같이 물었다.

나는 귀여운 아들을 안아주며 끝까지 다정하게 대답해주었다.

까마귀라고 똑같은 대답을 스물세 번을 하면서도 즐거웠다.

아들이 새로운 것에 관심이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했고 아들에게 사랑을 준다는 게 즐거웠다.

 

모든 관계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산상수훈-하나님과 관계)

마음이 멀면, 거리도 멀게 느껴지고, 시간도 길고, 지루하게 느껴 집니다.

마음이 담겨 있으면, 거리도 상관 없고, 시간도 상관 없습니다.

형 에서에게, 장자권과 축복을 빼앗은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절반은 쫓겨서, 유랑을 떠납니다.

그런데, 외삼촌 집에서, 만난 외사촌 동생, 라헬을 너무 너무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외삼촌이 라헬을 아내로 준다는 말에, 7년을 외삼촌을 위해서, 일하게 되는 데, (창 29: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의 마음을 이렇게 원하십니다.

성경에서, 수 많은 명령어들, 예를 들면, “…하라”. 혹은 “하지 말라”가 거의 2000번 정도 등장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명령을 강제성으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원 뜻도 아닐뿐더러, 그러한 것을 우리는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도 못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행하면, 하나님은 기뻐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마음을 가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을 나타낸 것들일 뿐, 완전하지 않습니다.

옆구리 찔러서, 인사 받는 식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먼저 그렇게 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인, 하나님의 소원을 기록한, 예레미아서를 보면, (렘 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후라는 말은, 은혜의 시대, 예수님 이후의 시대, 주님이 임하시는 바로 그 날, 성령이 역사하는 지금의 시대에 율법을 마음으로 끌고 들어가셔서, 마음에 기록한다는 말입니다.

강제성을 띤, 그 율법을 마음에 기록해서, 마음으로 원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소원의 말씀입니다.

사실, 원초적으로 하나님은 마음을 원하셨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하고 섬기기를 원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유이신 하나님을 닮게 함)

강제가 아닌 자유로 사랑하고, 동정하고, 의를 실천합니다.

대부분이 자유롭지 못해서, 사랑도 못합니다. (미운데 어떻게 사랑을 하나요?)

모든 것을 못하는 이유는 그 부분에 자유가 없습니다. (마음속과 겉이 다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유를 방종한, 인간의 죄성으로 인해서,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잊고 살아 온,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치기 위해서, 다시 등장한 것이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초등교사’처럼 등장한 것이, 강제성을 띤, 하나님의 율법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삼상 15:22)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중이었습니다.

 

그래서, 감사는 억지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감사를 가르쳐야 할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예를 들면, 아이들에게는 감사를 가르쳐야 하고, 예의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과정일 뿐, 마음의 감사까지 가야 하는 것임)

 

요즈음 부모들이 아이들이 너무 귀중해서, 아이들의 노예가 되어, ‘오냐병’ 걸린 것을 봅니다.

아이들을 오냐 오냐 하니까, 자기들이 최고 인줄로 알고, 학교에서 벌을 받으면, 부모에게 일러 바치고, 부모들은 학교로 뛰어 가서, 교장실을 점거하고, 체벌 선생님을 데려다가, 훈계를 하고, 격한 부모들은, 선생님에게 손 지검도 합니다.

부모보다 나이가 어린 선생님들은, 꼼짝없이 당하고, 시말서도 씁니다.

이러한 지경에서, 어떻게 교육이 세워질 지, 걱정이 됩니다.

성경은 아이들을 훈계하되 매를 들어서, 할 것을 말했습니다.

(잠 23:13)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심한 체벌이죠? –죽지 않을 만큼-

미국에서, 그러면 큰일 나죠? –문제가 많습니다.-

 

미숙한 아이들은, 강제로라도 실천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이죠?

물론, 그것이 완성아니라, 과정일 뿐인 것이죠!

자발성이 결여된 것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때때로 채찍으로 우리들을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성경의 교훈에도 두 개의 단계가 있습니다.

하나의 단계는 낮은 1.율법의 단계이고, 또 다른 차원 높은 단계는 2.은혜의 단계 입니다.

율법의 단계는 초등교사처럼, 어린 자의 몫이고, 은혜의 단계는 자발적인 성숙한 자의 것입니다.

 

바울은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성숙한 단계를 언급합니다.

(고전 13: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고전 13: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고전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무엇을 언급하려고, 어린아이를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요?

사랑이 최고라고,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사랑장’ 중에 삽입된 말씀 입니다.

그런데, 어린아이의 시절을 지나서,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 버린 것이 무엇이며, 터득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다음 구절, (고전 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주님을 직접 보는 은혜의 바로 그 날을 말합니다.

무엇을 안다는 말입니까? 사랑-

진정한 주님의 마음과 마음이 서로 만나는 그 사랑의 순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면, 율법의 단계에 있을 때는, 억지에 의한 얽매임인데, 은혜의 단계는 자발적인 기쁨으로, 사랑을 실천합니다.

 

율법은 억지로 하게 되는 데, 은혜는 즐거움으로 하게 됩니다.(표면적으로…한다는 것은 동일함)

그러한 의미에서, 어릴 때는 스스로 율법에 매이게 하는 것도, 은혜로 가는 길목이 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율법은 불완전 하다는 것입니다. (강제성이니까요.)

그래서, 이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시키려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억지 율법의, 자발적인 완성이 되십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자리하시면, 우리의 마음은 ‘율법을 뛰어 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 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돌아갑니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들이 즐거움으로 무엇인가? 를 하고 싶어 하게 됩니다.

 

바로 그렇게, 은혜의 즐거움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있는 데, 그것은 ‘감사’라는 단어 입니다. (무슨 감사입니까? – 구원의 감사-십자가 감사=샘과 같음

그래서, 그 감사는 샘물처럼 나오는 것입니다.

감사를 억지로 하는 사람, 보셨습니까?

진정한 감사는 자발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감사는 강제로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배에서 생수의 강>

 

물론, 영적으로 어리신 분들에게는, 의무적으로라도  감사를 권합니다. (은혜의 길목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천성적으로 감사성을 가지고 계신 분도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 중에도, 감사하시는 분들有)

그러한 분들은, 한층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쉬운 터전을 가지고 있다고 볼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이 베푸심’이 나에게 와서, 느껴짐으로여야 값진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 분이 주셨다고 외쳐도, 그 사실이 와서, 피부에 닿지 않으면, 냉랭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믿어지는 것이 은혜라는 말입니다.(롬5:2 믿음으로 서 있는 은혜)

믿어지는 은혜, 믿음의 은혜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구원도 그렇게 은혜를 통해, 주신 믿음의 선물입니다.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얼마나 큰 선물인가요?

그러나, 그것도 마음에 와 닿을 때, 감사하게 되는 마음의 요소입니다.

성경을 보면, 성경은 믿음으로 산 사람들의 성공기와 믿음으로 살지 않은 사람들의 실패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사람들의 성공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세상의 기복적인 성공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조들의 모든 삶을 포함하여, 바울 같은 사람들은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더 비극으로 살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모두 순교를 당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진짜, 예수님의 추종자들은 예수님 때문에, 화형을 당하고, 십자가에 죽고, 사자의 밥이 되었습니다. (주님으로 인해 살 수 있고, 죽을 수 있는 것이 성공입니다.)

그들은 예수님 한 분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거룩한 삶에 감동했다 해서, 그럴 수 있는 것일까?

감동차원으로 하나같이 그들이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일까?

아니라고, 봅니다.

예수에게 미쳤든지, 아니면, 예수님의 영으로 씌움을 당한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므로, 그 들의 마음에, 새김이 된 것입니다.

주의 생명력이 하나가 되어서, 그들 안에,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다시 오신, 주님으로 인해서, ‘새생명,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옛 것은 지나고, 새사람, 예수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새생명’,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명입니다.

이러한 새로움의 생명력이 그들을 그렇게, 자신을 던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큰, 감사는 ‘우리의 구원자로, 예수님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그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신학을 보면, 예수님이 늘 강화 됩니다. (십자가만 자랑,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고상함…주를 위해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음…)

항상 예수님이 그의 신학에 중심에 계십니다.

사상적으로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중심에 계십니다. (그냥이 아니라, 생명적으로 중심-목숨 검)

 

오늘 말씀에, (롬 3:21) 이제는 율법 외(without the Law)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롬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율법에 심취해 있던 한 사람이…율법을 벗어나는 은총.

율법으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 죄 가운데서,  모두가 죄인인 이 세상에서, 우리들의 죄를 짊어질 아무도 없는 절망의 어두운 세상에, 한 줄기 빛처럼 하나의 의가 나타나셨는 데, 그것은 은혜의 선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율법과 연관이 없는, 다른 의입니다.

그것은 율법의 명령을 받고 여기까지 왔지만, 그러한 것들과 전혀 연관이 없는, 율법외에, without the law, 율법과 관계없이, - 행위론적인 것이 아닌, 그리스도를 믿은 믿음의 의입니다.

그래서, 주시는 의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일년지냄의 감사는 십자가 구원의 이후이어야 함

우리가 할 수도 없는 율법에서, 해방시키신 예수님의 은혜가 진정한 감사입니다.(세상의 물질감사는 누구나함…믿지 않는 자들도 참으로 감사하는 분-그것도 감사지만, 핵심이 빠진, 안타까운 감사. = 우리들의 감사의 출발은 십자가임)–진정한 감사

우리들의 감사는 예수님이십니다. (마음에 이것이 담아 있으면, 그것이 가장 복된 감사입니다.)

이 감사는 Endless 감사로 이어지는 감사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주신 은혜에 마음으로 감사하면서, 풍요롭게 사시는 은총이 저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실까요?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구원에 대한 감사로 살게 해 주세요.

겸해서, 무사히 일년을 지켜 주심도 감사합니다.

기도합니다.

 

번호 제목 본문 설교날짜 설교자 주제 조회 수
79 음성설교 파일을 설교내용과 함께 올리는 방법 test  2018-03-21  test  test  37
78 천국의 대헌장-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은 자의 복-천국 마5:10-12  2018-01-14  남궁진 목사  산상수훈-팔복  46
77 천국의 대헌장-화평케 하는 자의 복, 하나님의 아들이라(7) 마5:9  2018-01-07  남궁진 목사  산상수훈-팔복  38
76 하나님의 한 의(2) 롬3:21-22  2017-12-10  남궁진 목사  대강절  42
75 하나님의 한 의(1) 롬3:21-22  2017-12-03  남궁진 목사  대강절  42
» 감사절-감사중의 감사 롬3:21-25  2017-11-19  남궁진 목사  감사절  42
73 천국의 대헌장-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하나님을 봄(6) 마5:8  2017-11-12  남궁진 목사  산상수훈-팔복  45
72 천국의 대헌장-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긍휼(5) 마5:7  2017-11-05  남궁진 목사  산상수훈-팔복  44
71 천국의 대헌장-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천국, 배부름(4) 마5:6  2017-10-29  남궁진 목사  산상수훈-팔복  46
70 천국의 대헌장(팔복)-온유한 자의 복, 땅(3) 마5:5  2017-10-22  남궁진 목사  산상수훈-팔복  48
69 천국의 대헌장(팔복)-애통 하는 자의 복, 위로(2) 마5:4  2017-10-15  남궁진 목사  산상수훈-팔복  50
68 천국의 대헌장(팔복)-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천국(1) 마5:1-3  2017-10-08  남궁진 목사  산상수훈-팔복  45
67 하나님의 전신갑주-모든 기도와 간구(7) 엡6:10-20  2017-10-01  남궁진 목사  영적무장  42
66 하나님의 전신갑주-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6) 엡6:17  2017-09-24  남궁진 목사  영적무장  82
65 하나님의 전신갑주-구원의 투구이신 예수 그리스도(5) 엡6:10-17  2017-09-17  남궁진 목사  영적무장  64
64 하나님의 전신갑주-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이신 예수 그리스도(4) 엡6:16  2017-09-10  남궁진 목사  영적무장  67
63 하나님의 전신갑주-평안의 복음의 신이신 예수 그리스도(3) 엡6:15  2017-09-03  남궁진 목사  영적무장  69
62 하나님의 전신갑주-의의 호심경이신 예수 그리스도(2) 엡6:14  2017-08-27  남궁진 목사  영적무장  60
61 하나님의 전신갑주-진리의 허리띠이신 예수 그리스도(1) 엡6:14-18  2017-08-20  남궁진 목사  영적무장  62
60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6) 엡6:10-13  2017-08-13  남궁진 목사  영적무장  48